[엠디팩트]질병 치료를 위한 보험? 기증·가족 제대혈 차이 아시나요

  • 입력 2015년 10월 15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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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제대혈 90% 차지 … 최대 400만원인데 활용 기간은 해당 아기의 4~12세까지로 좁아

제대혈 이식은 불치병 치료를 위한 안전판일까, 산모들의 불안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사기극일까. 한 때 미래형 의료기술로 관심을 모았던 제대혈 보관산업이 유효성·안전성 논란에 이어 일부 제대혈은행의 불공정계약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제대혈이식은 2000년대 들어 줄기세포와 함께 난치병 치료법의 하나로 관심을 모았다. 일부 인기 연예인 아이들의 제대혈을 보관한 내용을 홍보하면서 ‘우리 아이를 위한 가장 최선의 투자’ 라는 식으로 산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덩달아 제대혈을 보관하는 제대혈은행 수도 꾸준히 늘었다. 현재 전국의 제대혈은행 업체는 보건복지부가 위탁한 서울특별시제대혈은행, 차병원기증제대혈은행, 녹십자제대혈은행, 보령아이맘셀뱅크제대혈은행, 메디포스트제대혈은행, 아이코드제대혈은행, 베이비셀제대혈은행, 드림코드제대혈은행, 라이프코드제대혈은행 등 총 17곳에 달한다. 이들 기관에 보관된 제대혈은 2014년 말 기준으로 52만3487건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과 정치권은 제대혈은행이 유효성이 불충분한 제대혈을 이용해 각종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제대혈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제대혈 중 가족의 질병치료를 위해 보관하는 ‘가족제대혈’이 90%, 타인의 질병치료와 의학연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증제대혈’이 10%를 차지한다. 반면 미국 등 해외의 경우 기증 제대혈은행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족제대혈은 신생아가 태어날 때 탯줄에서 추출한 제대혈을 10년, 20년 등 특정 기간을 정해 비용을 부담해 보관업체에 맡기는 형태로 100만~400만원이 소요된다. 기증제대혈은 같은 방법으로 추출한 제대혈을 제대혈은행에 기증해 공공의 목적으로 쓰인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제대혈의 경우 비용이 고가임에도 활용 사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골수이식학회가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관된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할 확률은 많게는 0.04%에 그친다. 국제 의학계에서도 이같은 이유로 가족제대혈보다 기증제대혈 활성화를 권고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제대혈의 가족 보관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C대에서 바이오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모 교수는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악성림프종 등 조혈모세포(골수에서 자가복제 및 분화를 통해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의 혈액세포를 만들어 내는 세포) 이식이 필요한 질환은 가족제대혈보다 기증제대혈 사용이 권장된다”며 “태어날 때부터 발병인자를 갖고 있다면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할 경우 재발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맞는 기증 제대혈을 찾지 못할 경우 가족제대혈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제대혈보관 업체들은 ‘이식 시 면역거부반응이 없다’며 가족제대혈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대혈을 사용할 수 있는 연령이 제한되는 데도 업체가 이를 알리지 않고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목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가족제대혈의 보관기준은 기증제대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어서 활용도가 떨어진다. 제대혈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유핵세포수다. 제대혈을 이식할 경우 체중 1㎏ 당 약 1500만개의 유핵세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기증제대혈은행 기준인 8억개의 유핵세포로는 세포생존율을 고려할 때 체중이 42㎏ 미만인 아이에게만 이식이 가능하다. 이는 이식한 제대혈 세포의 80% 가량만 산다는 가정 아래 나온 계산이다. 즉 국내 평균으로 따지면 12살 이하의 아이에게만 이식할 수 있는 셈이다. 유핵세포 기준이 낮게 책정될수록 이식가능 연령도 낮아진다. 이 의원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몇몇 업체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유핵세포수 3억개로는 체중 16㎏, 4살 정도 아이에게만 이식이 가능한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정보가 계약 과정에서 산모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제대혈을 이용해 다양한 질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이야기만을 듣고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만일 평균 4살 정도까지만 보관된 제대혈로 이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30년 보관이나 평생보관 같은 고액 상품엔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에 계약해지가 불가능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가족제대혈은행 중 중도 계약해지가 가능한 곳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상품별로 잔여 기간에 따라 환불률이 정해져 있다. 계약해지 자체가 불가능한 곳도 있다. 예컨대 30년 보관을 계약했다면 15년이 지난 뒤 추가적인 보관이 필요없다고 판단돼도 해지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아이가 사망해도 계약해지가 불가능한 곳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실 조사결과 3개사의 경우 1개월 내 유아가 사망할 경우 전액 또는 실비 공제 후 환불해준다. 반면 한 곳은 21일내 사망할 경우에만 환불이 가능하며, 2개 업체는 환불 규정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제대혈보관업체가 수익성 높은 가족제대혈만 제대로 공지하는 탓에 이용자가 가격이 훨씬 저렴한 기증제대혈은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증제대혈은 조혈모세포 이식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한해 지난해 10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전체 치료비의 5~10%만 부담하면 된다. 이러면 제대혈 1병(50㎖, 요구르트 한병 크기) 이용시 본인부담금은 10만3000원~20만6000원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맞는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비용 면에서는 훨씬 저렴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혈은행들이 아이가 백혈병 등에 걸리면 가족제대혈이 없으면 치료가 어렵다는 식의 공포마케팅으로 일관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기증제대혈을 홍보해야 할 정부도 정책 추진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목희 의원은 “가족제대혈처럼 수백만원짜리 상품이 법까지 어겨가면서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판매되는 경우는 없다”며 “이런 모든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가족제대혈은행의 운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실효성이 의심되는 가족제대혈은행보다 기증제대혈은행 중심의 제대혈 보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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