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기 청동기시대 ‘제의용 환호’ 평택-구리에서 잇달아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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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삼한시대 소도의 원형”

경기 평택시 용이동에서 최근 발견된 청동기시대 소형 환호와 주거지 유적. 다른 주거지들보다 더 높은 구릉 정상에 있다. 한얼문화유산연구원
경기 평택시 용이동에서 최근 발견된 청동기시대 소형 환호와 주거지 유적. 다른 주거지들보다 더 높은 구릉 정상에 있다. 한얼문화유산연구원
《 ‘삼한의 여러 소국에 각각 별읍(別邑)이 있으니 이를 소도(蘇塗)라고 한다. 이곳에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소도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도적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

삼한시대 소도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청동기시대 ‘제의(祭儀)용 환호(環濠)’가 경기 평택과 구리에서 최근 잇달아 발견됐다. 특히 평택에서 발견된 유구는 청동기 환호 가운데 유일하게 구덩이에서 불을 피운 흔적이 나와 주목된다. 지금껏 문헌으로만 전하는 소도의 실체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

소형 환호 주변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와 돌칼.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소형 환호 주변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와 돌칼.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소도는 제정(祭政)이 분리된 삼한시대 때 제사장 격인 천군(天君)이 독자적으로 통치하던 곳이다. 세속 권력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지금도 시골마을의 성황당 옆으로 새 모양의 나뭇조각을 꼭대기에 매단 솟대부를 볼 수 있다. 전라도의 ‘소줏대’, 강원도 ‘솔대’, 경상도 ‘별신대’ 등 1700년 전 소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세기 무렵 삼한시대 소도의 원형 내지 기원이 기원전 8~10세기경 청동기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번에 열린 것이다.

소형 환호의 안쪽 노면 곳곳에 나 있는 기둥을 박은 구멍들. 일각에선 솟대를 세운 흔적으로 추정한다.
소형 환호의 안쪽 노면 곳곳에 나 있는 기둥을 박은 구멍들. 일각에선 솟대를 세운 흔적으로 추정한다.
14일 문화재청과 발굴기관인 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 따르면 경기 평택시 용이동 용죽도시개발사업지구 안에서 청동기시대 소형 환호 1곳과 같은 시대 주거지 39곳이 무더기로 나왔다. 소형 환호는 지름이 24m로 지금껏 발견된 청동기 환호 가운데 가장 작다.

앞서 경기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구리~포천간 고속도로 건설부지에서도 청동기시대 소형 환호 1곳과 같은 시대 주거지 24곳이 발견됐다. 이곳 역시 소형 환호의 지름이 34m에 불과하다. 마을사이의 경계를 구분 짓거나 방어용으로 만들어지는 지름 100m 안팎의 일반 환호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은 것이다.

두 곳의 소형 환호 모두 취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8일 직접 둘러본 평택 용이동 소형 환호는 구릉의 가장 정상에 자리 잡아 경사면 아래로 쭉 늘어서 있는 주거지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구리 교문동 환호도 마치 호위무사처럼 주거지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전문가 검토회의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이강승 충남대 교수(고고학)는 “소형 환호가 먼저 조성된 뒤 주거지를 에워싸는 외곽의 대형 환호들이 나중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형 환호의 도랑. 안쪽에 불을 피운 흔적(빨간 동그라미)이 여럿 보인다.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소형 환호의 도랑. 안쪽에 불을 피운 흔적(빨간 동그라미)이 여럿 보인다.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특히 평택 용이동 소형 환호의 도랑 안은 U자형으로 구덩이가 패여 있는 일반 환호와 달리 바닥이 평평하게 다져져 있다. 게다가 청동기시대 환호에서는 처음으로 도랑 안에 불을 땐 흔적이 다섯 군데나 발견됐다. 이남석 공주대 교수(고고학)는 “죽음과 관련된 의례가 행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형 환호의 안쪽 노면에서 발견된 지름 24~77㎝의 작은 구멍 34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주거용 나무기둥을 박은 흔적으로 보기는 숫자가 너무 많고 간격이 일정하지도 않다. 이 교수는 “주거용보다는 시신을 올려놓는 단을 세우기 위한 기둥 구멍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구멍이 솟대를 꽂은 흔적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발굴기관 관계자는 “제사를 치를 때마다 솟대를 새로 세우는 과정에서 땅에 구멍이 불규칙하게 생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구리시 교문동에서 발견된 소형 환호. 지름이 34m로 평택시 용이동 환호보다 약간 크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경기 구리시 교문동에서 발견된 소형 환호. 지름이 34m로 평택시 용이동 환호보다 약간 크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고고학)는 “환호들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제의용으로 보이며 1000년 뒤 삼한시대의 소도로 이어지는 기원 내지 원형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8일 열린 문화재청의 전문가 검토회의에서는 “청동기 소형 환호와 주거지는 학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국도 1호선 우회도로 건설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환호(環濠) ::

마을의 경계를 구분하거나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선사시대 마을의 외곽을 둘러싼 도랑을 말한다. 울산 검단리·천상리, 경남 창원 서상동, 충남 부여 송국리, 대구 동천동 등에서 청동기시대 환호 마을 유적이 발견됐다. 이번에 경기 평택과 구리에서 발견된 제의용 환호는 기존의 환호보다 크기가 작고 목적도 다른 것으로 보인다.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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