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상원의 ‘파격 개혁’… 의석 315→100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권한축소’ 개헌안 압도적 찬성 통과
상하원 동등 권한 독특한 구조 탓… 입법지연 등 정치불안의 온상 역할
상징적 지역대표 모임으로 축소, 사실상 해체… 렌치의 ‘정치 승리’
2016년 10월 국민투표로 확정

대한민국 국회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권한을 대폭 내려놓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 상원은 13일 본회의에서 상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실질적으로 상원을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179, 반대 16, 기권 7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개혁법안은 내년 10월에 국민투표에 넘겨진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인 안사가 전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315명에서 100명으로 무려 215명이 한꺼번에 줄어들고 법률 제정 권한도 없어진다. 그야말로 상원은 상징적인 지역대표 모임 정도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헌안은 이탈리아에서 수십 년간 계속돼 온 정치적 불안정을 끝내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마테오 렌치 총리(사진)가 상원 스스로 ‘정치적 자살(suicide)’을 선택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렌치 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정치의 오래된 역사가 끝났다. 이탈리아가 개혁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그는 앞서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상원이 오늘 헌법 개정 개혁안을 3번째 독회를 하면서 승인했다”면서 “이것이 최종 승인될지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제 오랜 세월 계속됐던 정치의 계절은 끝났으며 개혁이 완성됐고, 이탈리아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상하원 모두에 동등한 권한을 지닌 양원제를 도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 정권의 독재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의회는 정부의 입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채 상하원이 계속 서로 주고받으면서 입법을 지연시키거나 철회시켜 번번이 개혁을 좌초시켰다. 특히 개헌안에 대해서는 상하원을 각각 2번씩 통과한 후에야 국민투표를 하도록 돼 있다.

이번 상원 축소 개헌안도 올해 3월에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이번에 상원을 통과했지만, 앞으로 상하원에서 다시 한번 통과 과정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하지만 결과는 낙관적이다. AFP는 “렌치 총리가 가장 높은 산을 넘었고 개헌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며 “이탈리아는 실질적으로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마 루이스대의 정치학과 로베르토 달리몬테 교수는 “렌치 총리는 ‘도저히 개혁이 불가능할 것 같은 나라’에서 개혁을 지속해 나갈 능력을 이탈리아와 유럽에 보여주었다”며 “의회에서 법안 통과에 효율성을 높이고 로비스트의 막강한 힘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가 정부의 작동구조를 단순화해 ‘유선형’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슈퍼 화요일’”이라고 평했다.

한편 이번 개혁을 주도한 렌치 총리는 올해 마흔 살로 지난해 ‘노동법 개혁’에 매진해 이탈리아 경제가 3년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빠져나오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올해 8월의 실업률은 2년 내 최저치인 11.9%를 기록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이탈리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 내년에는 1.3%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렌치 총리의 다음 개혁 대상으로는 사법체계와 교육시스템이 꼽히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개혁#의석#권한축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