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대행업체 배달원은 근로자 아니다”… 법원 판결 계기로 본 ‘온디맨드 서비스’ 명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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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일자리 창출? 불안정 고용 양산?

법원 “배달 거절해도 제재 안받아”… 흉수 다친 알바 고교생 산재 제외
“주문만 하면…” 세차 - 대리운전 등… 모바일로 서비스중개 시장 급성장
종사자 최소한의 法보호 없어 논란

2013년 11월 당시 고등학생이던 공모 군(19)은 오토바이를 몰다가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정면으로 충돌해 폐쇄성 흉수 골절 및 흉수 손상을 입었다. 공 군은 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공 군은 배달대행업체 ‘S배달’의 배달원이었다.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음식점들이 배달 요청을 올리면 ‘수락’을 누르고 배달을 했다. 사고 당일에도 S배달 앱으로 ‘콜’을 받고 배달을 하던 중이었다.

사고 이후 공 군은 S배달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임을 인정받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진료비 약 25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액의 50%를 부담하라는 통보를 받은 S배달 측은 “공 군이 회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 피해액을 부담할 책임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최근 S배달 운영자 박모 씨(43)가 “재해보상액 강제 징수를 취소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 군을 S배달의 근로자로 볼 수 없는 만큼 박 씨에게 산업재해보상 책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 군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는 등 구체적 지휘·감독을 받지 않은 점 △배달원은 음식점 배달 요청을 골라서 수락할 수 있다는 점 △배달 요청을 거절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 근로자 없는 기업

S배달과 유사한 서비스를 온디맨드 서비스(On-Demand Service)라고 부른다. 모바일 기기나 PC를 이용해 소비자가 주문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뜻한다. 배달뿐 아니라 세차, 주차, 빨래, 청소, 애완견 돌보기, 대리운전 등 온디맨드 서비스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서비스 제공자를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로 볼 것인지 혹은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로 볼 것인지 논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 군의 경우처럼 서비스 제공 도중 사고를 당했을 경우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S배달 측은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에 사무실을 두고 사업을 했다. 주변 음식점에 필요할 때만 배달원을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고 이용대금으로 매달 10만 원씩 받았다. 필요할 때만 배달원을 부르고 건당 2500∼4500원의 배달 수수료만 주면 됐기 때문에 배달 전문 음식점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S배달이 설치한 프로그램을 통해 주문을 받고 배달을 한 사람은 2∼6명. 하지만 이들은 S배달 근로자가 아니었다. 바꿔 말해 S배달은 ‘배달원 없는 배달대행업체’인 셈이다. 오히려 배달원을 필요로 하는 음식점, 근무시간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배달원을 서로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한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에 가깝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 온디맨드 서비스의 명암

온디맨드 서비스 성장이 ‘새로운 노동 기회’인지 ‘고용 불안정의 가속화’를 이끄는 문제인지도 논란이다. 소비자로서는 이용 가능한 서비스 종류가 다양해졌지만 근로자로서는 급여가 낮아지고 고용 불안정이 심해졌다. ICT 업계에서는 “근로자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자유와 고용 안정을 맞바꾼 셈”이라고 평가한다.

온디맨드 서비스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글로벌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는 차량 보유자와 차량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창업 6년 만에 기업가치만 45조 원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렌터카 업체 허츠(Hertz) 기업가치(8조 원)의 5배 이상이다. 남는 방을 보유한 사람과 방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25조 원)도 글로벌 호텔 업체 힐턴(24조 원)과 비슷하다.

배달원 없는 배달대행업체인 S배달과 마찬가지로 우버는 직접 소유한 차가 없다. 에어비앤비도 직접 소유한 호텔은 없다.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는 7일 ‘테크 플래닛 2015’ 기조연설에서 “올해와 내년에는 우버와 에어비앤비와 같은 온디맨드 서비스가 폭발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각 업체는 규제와 보험, 기존 산업체제를 구축하던 수많은 이해관계와 얽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인적자원(HR) 관련 이슈도 앞으로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온디맨드 서비스(On-Demand Service)

모바일 기기나 PC 등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문형 서비스. 배달, 운송 수단, 건강, 미용, 의료, 법률 등 적용 분야도 다양하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온디맨드#일자리#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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