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아시아계 차별하는 ‘대나무 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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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노벨상 역사에서 여성 수상자는 48명, 고작 5%다. 최근 10년으로 범위를 좁혀도 10%대에 그친다. 아예 여성 수상자가 없는 해도 있지만 올해는 생리의학상,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과거에 여성 과학자 수가 적은 원인도 있었겠지만 노벨상에도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고위직 진출을 희망하는 여성을 가로막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에서 차용한 ‘대나무 천장’이란 신조어가 있다. 한인 이민가정 출신 제인 현의 책 ‘대나무 천장 부수기’(2005년)에서 나온 말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회사생활과 승진에서 차별을 겪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미국 내 64개 아시아계 권익단체가 교육부에 아이비리그의 입학 차별 문제를 제기한 항의서한을 보낸 것을 계기로 ‘대나무 천장’이 새삼 화제가 됐다.

▷전교 차석에 만점 가까운 수능 성적을 기록한 중국계 학생 마이클 왕은 올해 아이비리그 대학 6곳에 지원했다 퇴짜를 맞았다. 자기보다 못한 조건에도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대학 측에 불합격 이유를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비슷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교육은 성공의 보증수표’란 믿음으로 자식 농사에 집중한다. 전 인구 중 아시아계는 약 5%에 불과해도 하버드대 18%, 스탠퍼드대 24% 등 명문대의 학생 비율은 훨씬 높다. 한데 암암리에 이뤄지는 아시아계 입학 제한 탓에 대입 단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역차별을 딛고 명문대를 나와도 더 힘든 가시밭길은 사회 진출 이후 시작된다. 백인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고위직으로 승진하기란 쉽지 않다. ‘포천’ 500대 기업 중 아시아계 비중은 최고경영자의 1.4%, 기업 임원의 1.9%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유리천장보다 튼튼한 대나무 천장이 저절로 사라질 리 없다. 아시아계 스스로 겸양과 순종 등의 문화적 전통이 승진의 장애물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미 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키우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상에 오르려면 온몸으로 천장을 뚫어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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