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리한 ‘대통령 관심사업’이 정책 실패 부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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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실패 사례를 꼼꼼하게 분석해 ‘실패한 정책들―정책학습의 관점에서’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언론이 실패라고 평가한 정책 41건을 놓고 2011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선정한 11건에는 외환은행 매각, 중소기업 고유업종제, 용인 경전철 사업, 태백 오투리조트 사업, 사교육비 경감정책 등이 포함됐다. 이후 행정학 전문가들은 이들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를 4년에 걸쳐 사후 검증하듯 파헤쳤다.

실패한 정책들의 공통적 원인으로 분석된 것은 정치권과 지자체장의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무능한 관료, 부패한 사업구조였다. ‘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의 서민금융회사를 김대중 정부가 ‘상호저축은행’으로 격상시켜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이후 3개 정권에 걸쳐 감독은 소홀히 하면서 경영진과 유착해 부실을 키운 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특히 대통령이 정책 의제를 잘못 선정하고 과도한 관심을 표명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료들은 그 뜻을 받드는 것에만 신경 쓸 뿐 문제점을 직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공급된 전력에 대해 생산 가격과 거래 가액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 준 발전차액지원제도가 그 예다. 사업자는 정부 지원을 받으니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어 소비자 부담만 커진다. 2001년 도입된 이 제도는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때문에 오류를 시정할 기회마저 놓쳤다가 2012년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도로 대체됐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보고서 분석 대상엔 포함이 안 됐지만 대북(對北) 햇볕정책, 행정 부처의 세종시 이전 등은 대통령들의 무리한 관심이 국가 전체의 부담으로 남은 정책들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나 여론의 비판까지 외면하면 정책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대선 공약이나 ‘관심사업’이 현실과 동떨어졌거나 합리적 반대가 있는데도 국정의 우선순위에 놓고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위험하다. ‘아니면 말고’식 국정 실험은 결국 혈세만 낭비하고 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임기 절반을 넘긴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할 때가 됐다.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정책이라면 책임 소재라도 분명히 해 놓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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