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놈”…동료들의 계속된 멸시-욕설 참아내던 조선족 결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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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했다. 중국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10여 년 전 조선족 이모 씨(42)는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무작정 한국에 왔다. 조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일이 없는 날도 많았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했다.

2013년 서울 송파구의 한 양파 가공업체에 취직했다. 하루 종일 양파 껍질을 벗겼다. 월급은 대부분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숙식은 작업장으로 쓰이는 비닐하우스에서 해결했다.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며 참았다.

참기 힘든 것이 있었다. 모멸감이었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직장 동료들에게 받는 멸시는 견디기 힘들었다. 일부 동료들은 그를 “중국 놈”이라고 불렀다.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불만은 쌓여만 갔다.

결국 일이 벌어졌다. 올해 6월 11일 오후 6시 30분경 이 씨는 “왜 양파를 냉장고에 넣지 않느냐. 사람새끼도 아닌 것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동료 A 씨(64·여)와 격한 언쟁을 벌였다. A 씨의 전화를 받고 온 B 씨(55)도 가세했다. B 씨는 “경찰에 신고해 중국으로 보내버리겠다”며 욕설을 퍼붓고 “중국놈에게 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이 씨와 한차례 주먹다툼을 벌인 B 씨는 경찰이 신속히 출동하지 않자 재차 신고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 중국으로 추방될 것이고 더 이상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희망은 사라졌고 악만 남았다. 꿈을 앗아간 A, B 씨를 그 자리에서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양파 껍질을 깔 때 사용하던 흉기 2자루를 양 손에 들고 도망가는 A 씨를 따라가 살해했다.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B 씨도 수차례 찌르다 출동한 경찰을 보고 범행을 멈췄다. B 씨는 목숨을 건졌다.

재판에서 이 씨는 동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중국 놈’이라고 비하하며 괴롭혔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국가나 사회가 보호해야 할 최고의 가치다”며 “어떤 이유로도 살인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동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 김영학)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 씨의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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