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문서 송수신용 암호장비 해외서 도난… 비밀문건 샜을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2014년 10월 국방과학硏 파견소 분실… 대사관 40여곳 동일장비 긴급 회수
정부, 넉달동안 도난 사실조차 몰라… 오간 비밀팩스 암호 해독됐을 수도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암호장비를 도난당한 뒤 1년째 이를 못 찾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4개월이 지나도록 도난당한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나타나 그 사이에 정부의 암호체계와 관련 비밀사항들이 새나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11일 “A국가에서 운용하던 비밀문서 송수신용 암호장비가 지난해 10월 사라졌다”고 밝혔다. 암호장비가 설치됐던 곳은 A국가에 파견된 국방과학연구소(ADD) 현지 사무소로 밝혀졌다. 전 세계 한국대사관 무관부에 설치해 운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암호장비 ‘NX-02R’가 이곳에서 없어진 것이다. NX-02R는 비밀문서를 팩스로 주고받을 때 평문(平文)을 암호로 바꿔주는 장비다. 본보는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A국가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장비를 정확히 언제 잃어버렸는지, 누가 손댄 것인지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소식통은 “팩스 송수신 기록을 보면 마지막 시험통신이 있었던 게 지난해 6월이었다”며 “그 이후부터 분실 사실을 알게 된 10월 사이에 장비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다 보니 암호장비를 잃어버리고도 4개월이 지나도록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얘기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장비를 훔쳐갔다면 4개월간 이 장비의 성능과 기능을 분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4개월 사이 전 세계 40여 곳에 나가 있는 한국대사관 무관부에서 오간 비밀팩스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해독됐을 가능성이 있다. 암호장비 1개만 잃어버려도 전체 암호체계가 무너지는 위험을 안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사무소는 업무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2011년부터 이곳에서 암호장비를 운용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이 장비를 제대로 사용한 실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드시 필요한 장비도 아닌데 민감한 특수장비를 해외에 설치한 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던 셈이다.

정부 당국은 A국가에서 NX-02R가 사라진 직후 다른 국가에 있던 NX-02R를 전부 회수했고 암호체계 보완 조치도 했다고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담당자의 출장이 잦다 보니 보안을 철저히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지금은 장비가 모두 회수돼 보안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11월 관련 부처 주관으로 보안조사를 실시하고 암호장비 ‘분실사건’으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 뒤 이듬해 2월 관련자를 징계하는 선에서 일단락했다. 이 때문에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