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노 교수 바딤 네셀로브스키와 보컬 이부영이 만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1일 1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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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클리음대의 재즈 피아노 교수 바딤 네셀로브스키(38). 키스 재럿, 빌 에반스(1929~1980)의 피아노 독주를 사랑한다면 이제 이 낯선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교와 감성 양면에서 그는 요즘 세계 재즈계에 나타난 가장 빼어난 건반주자 중 하나다.

조금 길고 복잡한 그의 이름은 동유럽이 낳았다. 이민자인 그는 열일곱 살 때까지 흑해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자랐다. 지금은 재즈가 업(嶪)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 ‘별’은 다름 아닌 구소련의 한국계 음악영웅 빅토르 최(1962~1990)다.

“빅토르 최는 제게 짐 모리슨(1943~1971·그룹 ‘도어스’) 같은 존재였어요. 10대 초반, 오데사 스타디움에서 본 그의 공연도 생생해요. 그의 대표곡 ‘혈액형’을 재즈 피아노로 재해석해보기도 했죠. 러시아 모스크바를 가득 메운 엄청난 빅토르 최 추모 물결, 그 영상을 어떻게 잊겠어요.”

그의 운명은 그를 영웅의 혈액이 흘러온 땅,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땅에서 태어난 한 가수와 만나게 했다. 최근 한국의 베테랑 재즈 보컬 이부영(45)이 그와 함께 낸 듀오 앨범 ‘작은 별’은 리듬 악기가 없는 무중력 공간에서 목소리와 건반만이 보이지 않는 인력을 꿈결처럼 주고받는 역작이다.

둘의 협업은 이부영이 2013년 네셀로브스키의 첫 내한공연을 보고 크게 감동해 자신의 음반을 건네며 성사됐다. “부영의 목소리엔 재즈의 역사가 다 들어있었고, 거기에 한국만의 정서가 더 있었어요. ‘작은 별’(이부영 곡)의 아카펠라 도입부는 그레고리안 성가나 라가 같은 이국의 오래된 음악을 떠오르게 했어요. 눈 감은 저를 어느 새 천 년 전의 한반도로 데려갔죠.”(네셀로브스키)

둘은 첫 만남 뒤 e메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다 지난해 7월 서울의 올림푸스홀에서 만나 6시간에 걸쳐 대화 같은 즉흥 연주 방식으로 음반을 녹음했다. 앨범엔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랫말 뜻을 모르는 바딤의 즉흥 연주가 놀라웠어요. ‘Listen’에서 ‘그 쏟아지는 빗소리…’ 하고 노래하자 건반이 ‘또르르 또르르’ 했죠. 제가 쓴 ‘부재’란 곡에서 ‘쓸쓸합니다~’ 부분을 특히 그가 맘에 들어했어요. 근데 ‘합니다~’ ‘합니다~’가 특히 너무 아름답다며 무슨 뜻이냐고 물었죠. 하하하.”(이부영)

네셀로브스키와 이부영은 지난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처음 함께 관객 앞에 섰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도 출연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도 이제 더는 재즈 실황을 다루지 않아요. 한국 TV에서 재즈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건 축복이에요.”(네셀로브스키)

한국인 다수는 좋든 싫든 우크라이나의 음악 하나를 알고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도 쓰인 비장한 곡 ‘백학’. “전쟁터에서 숨진 군인이 학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 노래죠. 제 할아버지도 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제 뿌리와 한국 문화의 연결고리, 이 곡을 다음 내한공연 땐 꼭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고 싶습니다.”(네셀로브스키)

“재즈는 본질적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이부영의 말이 맞다면 네셀로브스키는 머나먼 한국에서 그의 조각 몇 개를 찾은 듯했다. 이번 앨범에서 해외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곡으로 ‘Once upon a Summertime’을 그는 꼽았다. 왜. “‘쓸쑬함니다….’ 하하하.”

임희윤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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