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김정은, 골든타임 놓치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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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국제부장
허문명 국제부장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안보적으로는 미일 동맹 강화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중국과 맞서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맹주로 부상하여 세계를 미국과 반분하고자 하는 이른바 ‘중-미 공존’ 전략하에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베이징 전승절 행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띄운(?) 것도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한국을 보다 친(親)중국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다 보니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이어 중국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보지 못한 ‘국제 미아(迷兒)’의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문제 삼아 이산가족 상봉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미사일 발사 협박을 했을 때 국내외적으로 이산 상봉 무산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아직까진 별문제가 없는 듯하다.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스크 입장에서 볼 때 남북관계 현안들이 이렇게 홀대받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 뉴스의 중심은 남북관계보다 한미 한중 한일 등 국제관계 이슈들이다.

미국은 ‘북한 피로감’을 보인 지 오래다. 워싱턴에서 북한 핵은 남북이 주로 풀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은 더이상 먹히기 어려운 형국으로 상황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한국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다소 우왕좌왕하고는 있지만 북한은 더한 것 같다. 국제정세 변화 자체를 아예 읽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성택 등 경험 많은 권력 핵심들이 죽고 난 후 김정은 주위에는 군부 강경파들만 둘러싸고 있고 이렇다 할 브레인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외부 세력에 끌려 다니지 않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세를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야흐로 남북관계의 의미와 좌표를 전반적으로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깊숙이 대화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과감히 협력의 문을 열어나가 전쟁 위기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한국은 동아시아의 주변국이 아니라 주도국이 되어 국제관계의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잡을 수 있다.

얼마 전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외교의 요체는 미중 간 균형이 아니라 남북관계에 있고 그것이 진정한 이니셔티브(외교적 주도권)를 갖는 일”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최근 미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고위 당국자를 만났을 때에도 그 역시 사견임을 전제로 “남북 협력이 확대되는 길만이 동아시아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년에 미국은 대선 정국으로 넘어가고 한국도 내년이면 총선, 후년엔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권력이동기에 남북협력을 해봐야 실효성이 별로 없다.

김정은과 북한이 국제적으로 점점 존재감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6개월 내지 1년이 골든타임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기를 넘겨버리면 한국과 미국에 새 정부가 구성되고 외교 정책이 자리 잡기까지 3, 4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중 간 대립구도는 더 심화되어 있을 것이고 한반도에서는 양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원심력이 더욱 커져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중국과 고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이 마음을 연다면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국제무대로 인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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