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원전사고 훈련은 실전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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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재난 대피 훈련의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모건스탠리의 기적’이다. 글로벌 금융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발사고를 계기로 매년 네 차례씩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하는 재난대피훈련을 실시해 왔다. 이로 인해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임직원 대부분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재난 상황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평소 비상훈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당장은 귀찮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훈련에 적극 참여해 머리가 아니라 몸이 행동지침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비상상황에서 생명을 지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원전사고를 가정한 방사능방재훈련이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13일 한빛 원전지역에서는 18개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원자력전문기관, 자원봉사단체 등 120여 개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방사능방재훈련이 실시된다. 지진 등 대형 자연재해로 인해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재난을 가정한 훈련으로 8시간 동안 진행된다. 정부와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의 대응능력을 높이고, 사고를 조기에 완화하며, 주민보호 대책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것이 훈련의 주요 목적이다. 한빛 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고창지역을 비롯해 무안 함평 장성과 전북의 부안지역 주민 2000여 명도 훈련에 참여한다. 주민들은 사고 발생 때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행동요령을 익히고 옥내 대피, 주민 소개, 구호소 이동 등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선박 사고 등 많은 사고 때 골든타임은 수십 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원전사고의 골든타임은 비교적 길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모든 전기가 끊어지고 나서 20여 시간이 지난 뒤 수소폭발로 방사능 누출이 시작됐다. 따라서 방송 등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이동을 하면 골든타임 안에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 방사능 비상상황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은 ‘공황’이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갑자기 무질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때 방사능이 누출되지 않았는데도 주민 수십만 명이 차를 몰고 나와 도로가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따라서 실제 원전 비상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은 당황하지 말고 평상시 방사능방재훈련처럼 대피 방송 및 유도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행동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방사능방재훈련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한 이유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Think the Unthinkable(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하라)’이라는 태도로 업무를 해야 한다. 즉,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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