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용지로, 문서 보존용으로… 1000년 가는 한지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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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뉴욕서 국내외 전문가 세미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

김희숙 작가(미국 필라델피아 해버퍼드대 미술학과장)의 작품 ‘낙원의 사이에서’ 시리즈 중 하나. 김 작가는 9일 뉴욕에서 열릴 한지 세미나에서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지의 수용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줄 예정이다. 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희숙 작가(미국 필라델피아 해버퍼드대 미술학과장)의 작품 ‘낙원의 사이에서’ 시리즈 중 하나. 김 작가는 9일 뉴욕에서 열릴 한지 세미나에서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지의 수용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줄 예정이다. 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1000년이 지나도 쉽게 변치 않는 종이.’

한지(韓紙)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다. 한지는 질기고 보존성이 좋은 특성 때문에 다른 종이와 비교할 때 활용도가 다양해 점차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9일 미국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는 ‘2015 한지 세계화 전략을 위한 국제 세미나’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정철)이 주관하는 이 세미나는 ‘천년 한지, 세계와 만나다’를 주제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지의 특성, 서화 예술 보존용 종이로서의 장점을 논한다.

○ 한지의 원료와 제조 과정

김형진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1000년 한지’의 특성이 원료와 제조 과정의 독특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인피섬유를 원료로 삼아 만든다. 장(長)섬유인 인피섬유는 서양 종이의 원료인 단(短)섬유나 펄프보다 훨씬 두껍고 질기다. 한지 제조 과정 중 가장 독특한 점은 잿물을 이용해 닥나무를 삶는다는 것이다. 잿물은 종이의 강도를 높이고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난 종이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이어 ‘도침’이라는 공정도 한지의 품질을 높인다. 종이를 방망이 등으로 다듬이질하듯이 내려치면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조직이 치밀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질기고 보존성이 좋으며 표면이 평활한 종이’인 한지의 특성이 생겨난다. 서양 종이의 내구연한이 최대 200년을 넘지 못하는 데 비해 한지는 1000년을 버티는 이유가 바로 독특한 재료와 제조 공정에 있다.

○ 예술을 위한 한지

이번 세미나에서 김희숙 작가(미 필라델피아 해버퍼드대 미술학과장)는 ‘서양지의 대안으로서 한지 사례 연구’를 발표한다. 김 작가에 따르면 한지는 다른 종이에 비해 뛰어난 수용력이 있다. 일반 종이에선 잘 번지는 유성 판화 잉크도 한지에서는 디테일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 아크릴 같은 수성물감 역시 한지에선 물기가 적당히 퍼지면서 자연스럽고 변치 않는 투명함을 만들어 낸다.

김 작가는 2003년부터 한지의 특성을 살린 예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왔다. 김 작가는 한지에 다양한 물감을 이용한 작품인 ‘낙원 사이에서(Paradise Between)’ 시리즈를 보여주며 한지의 표현력을 설명할 예정이다.

○ 보존 처리용 한지

종이로 된 고문서 등은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뒤에 다른 종이를 붙여 형태를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보존한다. 그동안 서양 박물관 등에선 일본의 화지(和紙)를 보존 처리용 종이로 많이 활용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보존 용지로서 한지의 우수성이 미국과 유럽의 보전 처리 전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티칸에선 지난해 교황 요한 23세의 애장품이던 지구본 복원에 한지를 활용하겠다고 결정했다. 또 미국 국회도서관도 한지의 내구성과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일본의 화지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만든 종이로 표면이 매끄러운 대신 잘 찢어진다. 반면 한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겨 내구성이 화지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점이 보존 처리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선 셰익스피어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국 워싱턴 폴저 셰익스피어 박물관의 지류 보존 처리 전문가인 레아 드스테파노 씨가 ‘보존 용지로서 한지의 활용 사례와 그 가능성’을 발표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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