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메뉴판 단어 길수록 고급레스토랑… 음식언어 ‘맛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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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맛없는 맥주, 실망스러운 서비스, 아주 훌륭한 식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인간 언어의 보편성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는 은유, 그리고 사람들이 특히 트라우마를 잘 느끼는 일상생활의 측면들을 암묵적으로 알려주는 힌트다.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댄 주래프스키·어크로스·2015년) 》

“요즘 음식점 사장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사장님 댓글’입니다.”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관계자가 해준 얘기다. 일과를 마친 음식점 사장들이 칭찬 리뷰에는 “감사합니다, 또 이용해 주세요^^”라는 댓글을, 비난 리뷰에는 “죄송합니다,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리뷰 응대가 잘 되는 식당이 실제로도 잘 된다”고 그 관계자는 말했다.

음식보다 ‘말’을 먹는 시대다. 블로그와 각종 앱에는 리뷰들이 넘쳐난다. ‘먹방’ ‘쿡방’ 붐을 타고 너도 나도 음식 맛을 논한다. 주말 저녁 서점을 가보니 신간 코너에 올라 있는 책 제목도 ‘음식의 언어’다.

음식의 언어는 미국 스탠퍼드대 최고 인기 강의로 꼽히는 언어학과 교양 강의다. 이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인 저자는 전자도서관에 보관된 100여 년 치 식당 메뉴들과 조리법, 음식점 리뷰에 적힌 말들을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호프집 맥주를 비난할 때는 ‘색깔이 없다’ ‘밍밍하다’ ‘차라리 개수대 물을 마시겠다’ 등 외형, 맛, 냄새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다채로운 표현이 쓰인다. 반면 칭찬할 때는 ‘완벽하다’ ‘훌륭하다’ 등 모호하고 단순한 단어들이 쓰인다.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상황보다 더욱 세세하게 구별한다는 언어의 ‘부정적 차별화’가 음식점 리뷰에도 적용된다.

음식의 언어학은 리뷰에 그치지 않는다. 메뉴에 사용된 어절의 평균 길이가 길수록, 형용사(신선한, 진짜 등)가 적을수록 비싼 레스토랑이다. 17세기 와인에 토스트 한 쪽을 넣어 먹던 풍습은 현대의 건배사(toast)로 이어진다. 저자는 메뉴판과 식재료, 술과 디저트로 이어지는 음식의 향연에서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준다. 시류를 타고 나온 책이겠거니 하고 재미 삼아 집어 들었지만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주말 저녁에 만날 만한 꽤 괜찮은 코스요리였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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