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북극항로 국내 첫 상업운항 성공… 본보, 항해일지 입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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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유영… 야말 가는 뱃길, 준설선 붐벼”

# 2015년 9월 1일(현지 시간)

“카라 해협 통과, 북극해상에 들어왔다. 러시아에 하루 한 번씩 보고를 해야 한다. 저위도에서는 보기 힘든 고래가 물을 뿜으며 유영을 하는 게 자주 눈에 띈다.”

# 2015년 9월 3일

“러시아 옵스카야 만 진입, 바다는 진한 갈색이다. 사베타 항구로 가는 길목에서 항로를 만들기 위해 해상의 모래와 흙을 퍼내는 수많은 준설선을 만났다. 러시아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러 야말반도 도착 7월 아랍에미리트(UAE)의 뭇사파 항에서 출발한 CJ대한통운의 ‘코렉스 에스피비 2호’가 4800t의 초대형 중장비를 싣고 북극항로를 경유해 9월 초 러시아 야말 반도 인근 해상에 도착했다. CJ대한통운 제공
러 야말반도 도착 7월 아랍에미리트(UAE)의 뭇사파 항에서 출발한 CJ대한통운의 ‘코렉스 에스피비 2호’가 4800t의 초대형 중장비를 싣고 북극항로를 경유해 9월 초 러시아 야말 반도 인근 해상에 도착했다. CJ대한통운 제공
올해 7월 17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뭇사파 항에서 출발한 CJ대한통운의 선박인 ‘코렉스 에스피비 2호’. 이 배는 한국 국적 배로는 처음으로 북극해를 거쳐 러시아의 야말 반도까지의 상업운행을 지난달 6일 마쳤다. 앞서 현대글로비스가 2013년 9∼10월 북극항로를 국내 최초로 시험 운항했다면, CJ대한통운은 야말 반도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에너지 사업에 사용할 중장비를 운송해 실제 북극항로의 상업성을 입증한 셈이다.

5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코렉스 에스피비 2호 김상섭 선장의 ‘북극항해 일지’를 통해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러시아 정부의 북극해 개발 현황과 210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에너지 사업인 ‘야말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재개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CJ대한통운 항해의 총항로는 약 1만7200km이며 이 중 1276km가 북극항로에 해당한다.

○ 국내 최초로 북극항로 상업 운항

올해 7월 17일 오전 11시 15분. UAE의 뭇사파 항에서는 김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8명과 미얀마 선원 11명이 탑승한 CJ대한통운의 배가 출발했다. 김 선장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길이 100m에 무게가 4800t에 이르는 초대형 중장비를 싣고서 난생처음으로 가 보는 북극항로를 통해 러시아의 야말 반도 인근 해상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본보와의 위성통화에서 “북극해의 얼음이 녹아있지만 유빙(流氷)과의 충돌로 침몰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실시간으로 북극의 유빙과 날씨 정보를 파악해 운항해야 해서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이번 운항은 한국 기업이 북극항로를 상업적 목적으로 운항해 성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극항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 대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게 된 바닷길. 이 항로가 주목받는 것은 기존보다 거리와 운항 일수가 크게 줄기 때문이다. 통상 한국 광양항에서 러시아 우스트루가 항까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기존의 인도양을 경유할 때보다 거리는 7000km, 운항 기간은 10일이 단축된다.

러시아가 추진하는 야말 프로젝트의 중심지인 야말 반도의 에너지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한 것도 이례적이다. CJ대한통운이 이번에 운송한 중장비의 화주는 엔지니어링 기업인 블루워터. 이 회사는 전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러시아 가스프롬의 엔지니어링 업무를 맡아 진행한다. CJ대한통운 측은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육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이번 사업을 수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극지 수송으로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평시보다 15%가량 높은 물류운송비를 받았다”고 말했다.

○ 서방 제재 벗어나 재개되는 ‘야말 프로젝트’


러시아 정부는 야말 반도에서 추진하는 에너지 사업에 대해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입국 비자와 별도로 야말 반도의 비자를 발급할 정도다. 이번 CJ대한통운의 항해에서도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영국인 엔지니어들이 중간에 항해를 포기했다. CJ대한통운도 이번 항해를 위해 6월 초부터 러시아의 북극해 항로관리청으로부터 ‘북극항로 운항허가’를 받고 선원들은 별도의 교육도 받았다.

원유와 가스 가격의 폭락,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야말 반도의 에너지 사업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 야말지역 인프라 공사 한창… 한국기업 참여기회 찾아야 ▼

북극항로 상업운항 성공

김 선장은 특히 이번 운항에서 북극항로에서 활발히 작업을 하는 준설선을 자주 봤다고 언급했다. 그는 “북극항로는 수심이 깊어야 20m 정도로 원유와 가스를 실은 대형 선박들이 오가기에 부적합하다”며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앞두고 뱃길을 만들기 위해 항로 준설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야말 지역의 육상에서도 원유 및 가스탱크 공사, 작업선의 입출항, 해저와 육상을 잇는 파이프라인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공사가 한창이었다고 김 선장은 전했다. 현지에 진출한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등의 다국적 기업 직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불황이지만 야말 반도는 러시아에서 최대 경제 호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항해의 성공을 전해 들은 국내 북극 전문가들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한동안 주춤했던 북극항로 개발 및 야말 프로젝트에 러시아가 다시 속도를 내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종만 배재대 교수(북극연구단 단장)는 “일본과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북극항로 및 에너지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빨리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cj대한통운#북극항해#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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