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선 1500명 학살사태 연루
남편 실종… 자신도 감금-성폭행당해
2년전 홍콩行중 인천공항서 탈출… 법원 “진술 모순 있지만 보호해야”
케냐 국적의 여성 A 씨(40)는 2013년 11월 만삭의 몸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홍콩이 최종 도착지였던 A 씨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동행자를 따돌린 뒤 경유지였던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뛰어들었다. 급박하게 보호를 요청하며 난민 신청도 했다.
A 씨의 증언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기구했다. 그의 남편은 케냐 키쿠유족 폭력단체인 문기키 조직의 일원으로 2008년 케냐 대통령 선거 후 발생한 폭력사태에서 케냐 정권과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증언하려던 중 실종됐다. 키쿠유족 출신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경쟁 후보 라일라 오딩가를 저지하기 위해 문기키 조직을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경쟁 후보 세력 학살이 벌어진 것. 약 1500명이 숨지고 35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는 2008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로 키바키가 대통령, 오딩가가 총리를 맡는 대연정이 구성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국제적 압력을 받은 케냐 정권은 문기키 조직원 검거에 나섰고, 이를 두려워한 A 씨의 남편은 조직을 탈퇴했다. 그러나 ICC 증언을 앞두고 남편은 2010년 4월 신원 불상의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 사라졌다. A 씨 역시 남편의 행방을 찾다가 2013년 5월 정부 쪽 사람들에게 체포돼 6개월간 감금당하며 온갖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A 씨가 임신을 하게 되자 정부 측이 A 씨와 태아를 중국에 팔아넘기기로 했고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던 중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무부는 A 씨의 진술에 모순점이 많다며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 씨는 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하태헌 판사는 “케냐 정부에 불리한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이 있어 박해를 받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며 A 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하 판사는 “급박하게 난민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기억에 일부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A 씨의 주장에 일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해도 처할 수 있는 박해의 정도를 고려해볼 때 난민으로 보호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하 판사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스토리를 준비하고 일부러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에 탔다가 탈출하는 것처럼 해 난민 신청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오로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박해사유, 탈출경위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무척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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