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재판’한 당신이 그립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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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겐 엄격하고 약자 보듬은… 故한기택 판사 10주기 추모 토론회

“(인사)평정권자에 대한 예속, 관료화의 심화 등의 우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포기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진정한 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한기택 대전고법 부장판사(별세 당시 46세·사진)가 2005년 2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며 동료 판사들에게 남긴 마지막 글의 한 토막이다. 모든 걸 다 바쳐 오로지 재판에만 열중한 까닭에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불렸던 그는 같은 해 7월 24일 말레이시아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10년 전 작고한 한 판사를 기리는 공개토론회가 3일 서울대 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우리법연구회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엔 박시환 전 대법관 등 판사 및 변호사 8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전 대법관은 한 판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추모의 글을 읽다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한기택 판사 10주기 공개토론회’에서는 생전에 한 판사가 보여준 모습을 회상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한 판사는 2005년 2월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관용차가 제공됐지만, 부인 등 가족에게 ‘단 1초’도 이 차를 태워주지 않는 등 엄격한 공직자의 도리를 지켰다. 그의 큰딸도 한 판사가 관용차를 단 1m도 태워주지 않았던 것이 답답하고 섭섭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한 판사가 세상에 남긴 판결들을 보면 무엇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2003년 3월 그는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인 배우자가 중국에 두고 온 성인 자녀의 한국 초청을 법무부가 막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2004년 9월엔 앞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고 있는 것은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비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남긴 판결들은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판사’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 깊은 고민의 얘기들이 오갔다. 장철익 서울고법 판사는 “우리는 목숨 걸고 하는 재판(성의), 경청과 소통이 있는 재판, 당사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재판 등 세 가지를 통해 좋은 판사 그리고 좋은 법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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