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욕망에 눈이 멀어… ‘태양의 서쪽’으로 간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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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위해서 울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2006년)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핍’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지메는 외동아들이다. 그의 첫사랑 시마모토 역시 외둥이였고, 소아마비를 앓았던 탓에 왼다리를 절었다. 불완전한 존재였던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터놓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루키에게 첫사랑은 상실의 기억이다. 하지메와 시마모토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고 사춘기라는 묘한 시기를 겪으며 헤어진다. 세월이 흘러 삼십 대가 된 하지메는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두 딸의 아버지가 됐다. 재즈바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할 것 없는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결핍돼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마모토가 찾아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하지메와 시마모토는 어린 시절 냇 킹 콜의 ‘국경의 남쪽’을 들으며 그곳에 있을 막연한 무언가를 상상한다. 하지만 나중에 영어 가사의 의미를 듣고 그곳이 멕시코란 걸 알고는 실망한다. 국경의 남쪽은 아마도 우리가 좇는 삶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시시한.

일상의 행복이 시시해지면 맹목적인 욕망에 눈이 멀 수 있다. 소설에서는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등장한다. 시베리아 벌판의 농부는 매일 동쪽에서 해가 뜨면 밭을 갈고 서쪽으로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면 어느 순간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태양의 서쪽을 향해 하염없이 걷다가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메에게 태양의 서쪽은 시마모토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두 딸을 버리고 가려고 했던 그곳은 어느 날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또 한번 실연을 겪고 난 뒤 더는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하지메의 독백이 마음에 남았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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