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 1위 탈환 야욕이 부른 ‘폭스바겐 제국의 몰락’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5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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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클린 디젤’을 앞세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리드하던 폭스바겐의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사건 발생 7일 만인 지난달 25일 임기 연장을 하루 앞두고 사퇴한 폭스바겐그룹의 마틴 빈터콘 회장.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디젤 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클린 디젤’을 앞세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리드하던 폭스바겐의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사건 발생 7일 만인 지난달 25일 임기 연장을 하루 앞두고 사퇴한 폭스바겐그룹의 마틴 빈터콘 회장.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 배기가스 조작 사건 원인과 파장

질소산화물 배출 허용 기준 40배 초과
美 환경단체 ICCT, 추적 끝 조작 밝혀

벌금 등 사태 수습 비용 총 86조원+α
빈터콘 회장, 사건 발생 7일만에 사퇴
규제 강화…디젤차 시장 대격변 예고

‘클린 디젤’을 앞세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리드하던 폭스바겐의 아성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기술력과 정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독일인들의 자존심도 함께 추락했다. 이는 폭스바겐의 의도적인 디젤 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 때문이다. 파장은 엄청나다. 보름 만에 폭스바겐의 주가는 43% 가량 폭락했다. 40조원에 가까운 시가 총액이 단숨에 날아갔다. 78년 역사의 자동차 제조업체 폭스바겐그룹을 이끌던 마틴 빈터콘(68) 회장은 사건 발생 7일만인 지난달 25일 임기 연장을 하루 앞두고 사퇴했다.

폭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벌금과 리콜 등의 사태 수습 비용으로 최대 650억유로(약 86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폭스바겐그룹의 지난해 영업 이익 127억유로(약 16조7500억원)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 세계에서 소비자 소송이 이어질 경우 최대 110조원에 달하는 사태 수습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폭스바겐(Volkswagen)과 아우디(Audi)는 물론 람보르기니(Lamborghini), 두카티(Ducati), 포르쉐(Porsche), 벤틀리(Bentley) 등의 슈퍼카 브랜드를 비롯해 스코다(Skoda), 시아트(Seat), 만(Mann), 스카니아(Scania), FAW(First Automobile Works), 유롭카(Europcar)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자동차 제국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 세계 시장에서 504만대를 판매했다. 하지만 배기가스 조작 사태로 그룹은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 배기가스 조작 사건은 대체 왜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이며, 향후 어떤 파장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아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번 파문은 지난달 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의 배가가스 배출 소프트웨어 조작 사실을 적발해 48만2000여대의 디젤 차량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모든 디젤 차량에는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처리 장치와 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가 구동된다. 폭스바겐은 고의적으로 이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 자동차가 배기가스 검사 모드일 때는 법규를 통과하기 위해 오염물질 배출을 낮추고, 일반적인 도로 주행 상황에서는 미국 매연 기준의 약 40배를 초과하는 질소산화물(NOx)을 배출시켰다. 질소산화물은 기관지염, 폐렴, 천식과 같은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 되는 독성 물질이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의 각종 오염물질 배출량 테스트가 실험실에서만 이뤄지는 현행 법규를 조작 소프트웨어를 통해 의도적으로 악용했다.

폭스바겐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나?

폭스바겐이 사기라고 봐도 무방한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저지른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 1위 탈환의 야욕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클린 디젤’을 표방해 친환경적이면서도 높은 연비와 출력을 내는 디젤 차량으로 유럽 시장을 휩쓸었다. 유럽의 디젤차 점유율은 2006년 이후부터 50%를 돌파했다. 또 폭스바겐이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 시장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했다. 하지만 환경규제가 해마다 강화되면서 폭스바겐은 기술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환경 규제가 유로5에서 유로6로 강화됐고, 미국에서는 더 강력한 환경 규제인 TIER-2에 맞춰야 했다. 유로6의 질소산화물 허용치는 80mg/km이고, 미국의 TIER-2 배출기준은 그 절반인 40mg/km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규제에 맞추기 위해 폭스바겐은 기술 개선이 아닌, 소프트웨어 조작을 택했다. 가솔린이 강세인 미국에 디젤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자사의 디젤차가 뛰어난 연비와 파워를 내면서도 유해물질이 적게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덕분에 폭스바겐의 주력 차종인 골프의 경우 미국의 자동차 전문 컨설팅 회사 오토퍼시픽이 선정한 ‘2015년 가장 이상적인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웃지 못 할 촌극이었던 셈이다. 기술적으로는 출력과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 조작을 감행했다. 일반적으로 디젤차는 질소산화물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구간에서 가장 우수한 연비를 뽑아낸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배기가스 배출 규정을 강화해 환경을 무시한 채 연비만 높이려는 자동차 회사들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불법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 규정을 통과했다. 실제 주행 시 연비는 좋지만 엄청난 오염물질을 뿜어내는 자동차를 만들었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은 어떻게 밝혀졌나?

문제가 된 폭스바겐 2.0디젤 엔진(EA 189엔진)의 배기가스 조작은 미국 비영리환경단체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2년여에 걸친 추적 끝에 밝혀졌다. ICCT는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유럽 디젤차가 정말로 환경에 무해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폭스바겐의 EA 189엔진을 장착한 차량이 실제 도로 주행 시에는 기준치보다 40배 많은 오염물질을 뿜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폭스바겐은 그동안 조작 사실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미 연방정부가 차량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나서자 비로소 모든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배기가스 조작은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나?

디젤 엔진은 필연적으로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시킨다. 각국 정부가 유로6를 서둘러 도입하는 이유다. 최대한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한 배기가스 저감장치는 크게 2가지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폭스바겐의 EA 189엔진에 장착되어 있는 EGR방식(타고 남은 연료가 배출가스로 바뀌어 엔진 밖으로 나오면 이를 모아 다시 엔진 속으로 넣어주는 방식) 또는 요소수 SCR 방식(질소산화물에 촉매를 넣어 질소와 산소로 분리시키는 방식)이다. 폭스바겐이 선택한 EGR 방식에는 필연적으로 질소산화물 제거 장치인 LNT(Lean NOx Trap)라는 부품이 사용된다. LNT는 배기가스 중의 질소산화물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황화물(SOx)도 함께 걸러낸다. 주행 거리가 길어지면 LNT에 질소산화물과 황화물이 쌓여 효율이 떨어진다. 이 물질을 연소시켜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디젤 연료가 함께 소모돼 연비 저하로 이어진다. 더 효율적인 SCR 방식을 사용하거나 LNT 방식과 병행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주력 차종인 중형차종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규정에 맞춰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자니, 연비와 출력이 떨어지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기술적인 극복이 아닌,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일반 도로 주행시 LNT의 작동을 아예 중지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폭스바겐의 실 연비가 뛰어난 이유도 여기 숨어있다. LNT 작동을 멈춰 엄청난 오염물질을 함께 배출했기 때문이다.


신뢰 하락과 규제 강화로 디젤차의 시대 저무나

폭스바겐그룹은 인체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이나 미세 먼지 등의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것처럼 ‘클린 디젤’이라는 용어를 앞세웠고, 압도적인 연비와 가격대비 뛰어난 성능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조작에 의한 허구였다. 폭스바겐 사태로 인해 환경 문제에 취약한 디젤차의 치명적인 약점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반(反) 디젤차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디젤차 환경 규제 역시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또 있다. 현행 유로6 규제의 실내 측정 방식이 지닌 한계다. 국제청정운송위원회(ICCT), 독일 환경보호평가연구소(LUBW), 독일운전자클럽 아데아체(ADAC) 등은 실제 도로를 달리며 측정하는 방식인 RDE(Real Driving Emissions)를 적용하면 현재 유로6를 통과할 수 있는 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폭스바겐처럼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고 해도, 환경 문제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RDE 측정 방식은 2017년부터 도입되는데, 전 세계의 모든 디젤 차량은 2년 안에 이 기준에 맞춰야 한다. 디젤차들이 현재의 높은 연비와 파워를 유지하면서 RDE 측정 방식으로도 유로6를 통과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디젤차의 인기가 주춤한 사이 친환경차인 전기차,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이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폭스바겐 사태로 인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격변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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