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집유기간 사회봉사 명령 어겨도 손못쓰는 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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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권 회복 청구 악용 사례 늘어

2012년 9월 사기 절도 무면허운전 등 5가지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및 1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권모 씨(26). 권 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자마자 종적을 감춘 뒤 사회봉사도 하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해 초 집행유예 취소 재판을 열어 권 씨가 실형을 살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검거된 권 씨는 “집행유예 취소 재판이 열렸다는 사실을 고지받지 못했으니 재판을 다시 받게 해 달라”며 법원에 상소권 회복을 청구했다. 법원은 권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집행유예 취소 결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미 지난해 9월로 권 씨의 집행유예 기간(2년)이 지난 상태였다는 것. 집행유예 취소가 무효화되는 순간 권 씨는 징역은커녕 사회봉사 명령도 수행할 필요가 없는 자유의 몸이 돼 유유히 법정을 떠났다.

일부 피고인이 상소권 회복 청구 제도를 악용하고 법원이 이를 관대하게 받아들여 권 씨처럼 형벌 집행 자체가 무력화되는 황당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피고인 입장에서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날 때까지 도망을 다니다가 “집행유예 취소 재판이 열린 줄 몰랐다”고 주장하면 실형뿐 아니라 각종 명령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2일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부장 이영기)에 따르면 관내 사건 중 법원이 상소권을 회복해준 비율은 2013년 20.2%(456건 중 92건)에서 48.1%(54건 중 26건)로 크게 높아졌다. 권 씨처럼 집행유예 기간이 지난 상태에서 상소권을 회복해 형벌을 면제받은 피고인은 상해 전과 17범의 김모 씨(50) 등 지난해에만 3명이었다. 청구 기한(선고 고지 후 7일 이내)을 넘겨 상소권 회복을 청구했는데도 법원이 받아준 사례도 2건 있었다. 근무 경력이 20년인 한 보호관찰관은 “처음부터 가짜 주소지를 신고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비호 아래 도망 다니는 대상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보호관찰 대상자가 임의로 주거지를 옮기고도 이를 보호관찰소나 법원에 알리지 않아 집행유예 취소 재판을 고지받지 못했다면 상소권 회복 청구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상소권 회복을 결정하기 전 해당 피고인을 수사했던 검사나 담당 보호관찰관의 의견을 듣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상소권 회복 청구

형이 확정된 피고인이 재판이 열린 사실을 고지받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받을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제도.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집유기간#사회봉사#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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