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주말 야구여행] 꿈이여! 추억이여! 낭만이여! 아듀! 대구구장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2일 05시 45분


해질녘 붉은 노을은 대구구장만의 낭만과 운치였다. 이제 저 붉은 저녁노을처럼 대구구장도 역사의 뒤편으로 지려고 한다. 2일 kt-삼성전에서 팬들과 이별식을 한다. 포스트시즌이 아직 덤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대구구장에서 펼쳐지는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는 이날이 역대 2066번째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해질녘 붉은 노을은 대구구장만의 낭만과 운치였다. 이제 저 붉은 저녁노을처럼 대구구장도 역사의 뒤편으로 지려고 한다. 2일 kt-삼성전에서 팬들과 이별식을 한다. 포스트시즌이 아직 덤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대구구장에서 펼쳐지는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는 이날이 역대 2066번째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주말기획|굿바이! 대구구장. 헬로! 라이온즈파크

2일 삼성-kt ‘대구구장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모든게 낡고 허름하고 비좁았지만
우리에게 꿈과 희망·추억을 선물하고
수많은 전설을 탄생시킨 열정의 현장
매일 출근 도장 찍던 꽹과리 아줌마,
교련복 아저씨도 그리워지겠지…


“아재야∼! 아재야∼!”

아침부터 부지런히 김밥을 말아온 아지매들, 대구의 명물 납작만두를 구워 파는 할매들의 고함소리, …. 밀려드는 인파 사이를 가르며 들려오는 호객행위는 귀찮음보다는 정겨움이었고, 대구구장만의 익숙함이었다. 그들의 힘찬 목소리는 오늘도 이곳에서 야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메시지였고, 곧이어 뜨거운 승부가 펼쳐질 것임을 암시하는 예고탄이었다. 이젠 그 아지매들과 할매들의 카랑카랑한 고함마저 그리워질지 모르겠다.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로 35길 12-1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1982년 삼성 라이온즈가 둥지를 튼 지 벌써 34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세월은 무심히도 그렇게 거침없이 빨리 흘러왔다. 2일 ‘원년팀’ 삼성과 ‘막내팀’ kt의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역대 2066번째 경기를 끝으로 팬들과 이별식을 한다.

대구구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열악함이다. 모든 게 낡고, 허름했고, 비좁고, 누추했다. 가뜩이나 무더운 대구 날씨에 그늘조차 찾기 힘든 콘크리트 야구장. 인조잔디에서 올라오는 지열까지 더해지면 한여름 대구구장은 ‘거대한 야외 찜질방’이나 다름없었다.

낙후된 시설로 인해 해프닝도 많았다. 덕아웃에서 취재진과 감독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살찐 쥐가 발밑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일도 종종 벌어졌고, 2006년 안전진단 결과 E등급(붕괴 위험) 판정을 받았지만 H빔으로 3루 덕아웃 위 관중석을 떠받치는 임시처방을 하면서 ‘H빔 파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1년에는 두산 정수빈이 기습번트를 대고 1루로 달려가는 사이 정전 사태가 빚어져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게임으로 처리되고, 같은 해 ‘소방수’ 오승환의 개인통산 200세이브를 축하하는 불꽃놀이를 하다 전광판 위로 불이 나는 바람에 진짜 소방수와 소방차가 긴급 출동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고운 정도 정이고, 미운 정도 정이다. 낡고 비좁은 옛집에 살 때는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또 막상 크고 좋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두고 떠나는 옛집이 그리워진다. 이별은 그런 것,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헤어지려고 하니 벌써부터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아려온다.



대구구장, 아마전용구장으로…


그렇다. 돌이켜보면 대구구장은 우리에게 참 많은 선물을 해줬다. 꿈을 심어줬고, 추억을 남겨줬고, 낭만을 만들어줬다. 팍팍한 삶에 지쳐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찾아가면 그곳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용기를 줬다. 누군가에겐 청춘을 바친 꿈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겐 밥을 먹게 만들어준 삶의 터전이었다.

‘헐크’ 이만수가 프로야구 초창기 홈런의 참맛을 알려주고, 김시진과 김일융의 원투펀치가 합작 50승을 달성(1985년)하는 신화를 쓰고, 0.331의 역대 1위 통산타율을 남기고 하늘로 먼저 간 장효조가 안타를 제조하던 곳. 그 장효조의 10번을 물려받은 양준혁이 위풍당당하게 전력질주를 하고, ‘국민타자’ 이승엽이 잠자리채를 몰고 다니며 홈런의 전설을 탄생시켰던 곳. 대구구장은 푸른 피가 흐르고, 푸른 함성이 펼쳐지고, 푸른 꿈이 익어가는 곳이었다.

구식이어서 미안하고, 불편해서 죄송했지만, 먼훗날 그 시절을 뒤돌아보면 그 구식과 불편함마저 “그땐 그랬다”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오는 날이 오겠지. 대구구장에 출근 도장을 찍던 ‘꽹과리 아줌마’와 ‘교련복 아저씨’도 그리워지겠지. 1948년 태어나 올해로 68년째. 종이를 절반으로 접듯 대구구장의 인생은 아마추어야구로 34년을 살아왔고, 프로야구로 34년을 살아왔다. 수구초심처럼, 이제 다시 아마추어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안마당을 내어줄 생각이다. 서울 동대문구장, 부산 구덕구장, 인천 도원구장, 광주 무등구장, …. 프로야구 원년을 장식해준 추억의 야구장들이 모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보고싶어도 보지 못하는 그 옛날의 야구장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추억과 추억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준 대구구장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다. 고별전에 이만수도 오고, 박충식도 오고, 양준혁도 온다고 하니 부자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손잡고 마지막 추억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대구구장 앞 대성각의 짜장면과 우성식당의 오뎅된장비빕밥도, 납작만두 파는 아지매와 할매들의 고함처럼 어느 날 문득 그리워질 날이 올 테니까.

꿈이여, 추억이여, 낭만이여! 대구구장아, 그동안 고마웠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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