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출입은행 부실 키운 낙하산 은행장의 ‘황제 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0시 00분


코멘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1년 반 동안 18회 해외출장에 총 101명의 수행을 받으며 9억9248만 원의 경비를 쓴 사실이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기업의 수출입과 해외투자를 지원하는 수출입은행(수은)의 특성상 해외출장이 잦을 수는 있다. 그러나 수은이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임 행장들이 1, 2명의 실무직원을 동반한 반면 이 행장은 평균 5.6명의 임직원을 수행시켜 1박당 69만 원의 숙박비를 쓰는 등 ‘황제 출장’을 방불케 했다. 홍 의원이 “부실 여신 등으로 최근 5년간 2조70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출자받아 연명하는 수출입은행이 긴축경영을 하기는커녕 과도한 의전으로 정부의 예산운용 지침을 어겼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

더구나 이 행장은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의 출신 대학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이 모인 ‘서금회’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작년 3월 임명될 때 ‘낙하산 논란’이 일자 “낙하산 인사가 무슨 죄냐” “박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다녀온 출장도 기업 지원보다는 박 대통령이 1년 전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한 독일 드레스덴의 통일 세미나처럼 정권과 코드 맞추기 식 출장이 적지 않다. 해외출장 경비가 한정된 수은에서 이 행장이 황제 출장을 다니는 바람에 정작 직원들은 해외 대출심사에 필요한 실무 출장마저 가기 어려웠다니 수은의 부실을 키우는 데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은의 허술한 대출심사와 기업관리 행태 때문에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경남기업 성동조선 대우조선 등에 대한 부실 대출이 쌓여 수은의 부실 채권은 2006년 489억 원에서 2조4000억 원으로 불었다. 은행 건전성을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01%로 국내 18개 은행 가운데 가장 낮다. 수은이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해 수천억 원을 대출해 준 전자업체 모뉴엘은 3조 원대의 사기대출과 분식회계를 일삼다 부도가 났고 임직원들이 뇌물을 받아 기소되는 도덕적 해이까지 드러났다.

이 행장은 어제 국감에서 “부실 기업을 정리하는 소임을 맡아 부실이 늘어났다”고 변명했으나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내부 개혁을 못한 책임이 크다. 낙하산 행장이 방만한 경영을 하는 국책은행에 언제까지 혈세를 퍼부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