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글씨와 김종영의 조각 나란히… 서화 앞 無爲의 형상서 묘한 화성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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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전

김정희의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왼쪽)과 김종영의 청동상 ‘작품 68-1’(1968년). 학고재 갤러리 제공
김정희의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왼쪽)과 김종영의 청동상 ‘작품 68-1’(1968년). 학고재 갤러리 제공
불계공졸(不計工拙).

‘잘됨과 못됨을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작품 첫머리에 찍는 인장에 새겼던 여러 글귀 중 하나다. 당장 눈앞에 놓인 글자 하나만 바라보며 붓을 움직이는 깜냥으로는 짐작할 길 없는 경지의 단언이다.

추사의 글과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이는 ‘불계공졸과 불각(不刻)의 시공’전이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김종영은 “추사 글씨의 예술성은 리듬보다 구조의 미에 있다. 내가 그를 폴 세잔에 비교한 것은 그의 글씨를 대할 때 큐비즘(입체파)이 연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잔은 모든 존재를 몇 가지 기하학적 기본 형태와 양감으로 포착한 작품을 통해 큐비즘을 잉태시켰다. 비대칭 구조의 생기에 주목하며 절제를 뛰어넘은 무위(無爲)를 추구한 김종영의 조각이 추사의 글 앞에 놓여 묘한 화성(和聲)을 얹는다. 한 번 돌아봐서는 종잡을 길 없었고, 두 번 돌아보니 흐릿했다. 세 번 찾아가니 조금은 아쉬운 구석이 보인다. “서화 감상은 잔혹한 형리(刑吏)의 손길처럼 무자비해야 한다”고 했던 추사의 말을 감히 빌리자면, 금옥 같은 재료가 한층 높은 구조미를 낳으며 어우러지지는 못한 여운이다. 02-720-152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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