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공감 사회]디테일의 차이가 선진국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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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물 없이 맛있게 밥 짓는 방법이 있다. 불린 쌀에 물 대신 얼린 맥주 거품을 넣어주면 된다. 최근 ‘생활의 달인’에서 소개한 일식 셰프의 비법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신기했다. 손님들이 맨밥만 먹어도 입에 착착 감긴다고 칭찬했던 맛의 비결은 사소한 듯, 결코 사소하지 않은 디테일의 힘에 있었다.


쿡방에서 배우는 신의 한 수


쿡방(요리방송) 전성시대답게 돌리는 채널마다 요리 과정을 보여준다. 한 프로그램은 소문난 반찬가게들을 찾아가 초보 주부가 알아두면 좋을 ‘신의 한 수’를 일러준다. 가령, 계란말이를 만들 때는 우유 식초를 약간 넣고 젓가락으로 선을 긋듯 풀어줘야 부드러운 식감을 낼 수 있단다. 같은 재료에 약간씩 조리법을 달리한 반찬을 시식한 사람들이 매번 요리고수의 비법으로 완성된 쪽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놀라웠다.

소소한 차이가 차곡차곡 쌓여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는 마케팅의 전 과정에 걸쳐 디테일의 차이를 강조한다. 한국에서 이벤트를 열 때도 행사장 소품부터 초청장까지 본사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이렇듯 깐깐하게 통제하는 것은 작은 변화로 공든 탑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한쪽에서는 가난에 허덕이던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성과를 뿌듯해하는 반면, 일각에선 ‘지옥 같은 나라’란 의미로 신조어 ‘헬(hell) 조선’을 들먹인다. 왜 이런 간극이 생겼는지 알 수 없어도 그간 우리가 숲만 쳐다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계란말이 하나도 재료나 과정에 조금씩만 변화를 주면 식감 차이가 확연한데 나라를 만들어가면서 디테일의 가치를 무시한 업보인가 싶다.

다들 한 마음으로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죽기 살기 달려온 끝에 일단 목표지점에 도착했으니 지금부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곳인지 세부항목을 점검할 때가 온 것 같다. 거센 비바람을 피할 집의 외관은 얼추 갖췄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구석구석 미완성이다. ‘역대급 스펙’을 갖췄다는 청년들은 ‘고용절벽’ 앞에 좌절감을 느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를 기록한 어르신들 처지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베이비붐 세대는 ‘낀 세대’를 자처하며 자녀 양육, 부모 봉양의 부담에 허리가 휜다고 말한다.

세대 이념 계층 지역으로 갈라진 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우리가 물려받은 자산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이 땅에 하늘을 열 때 사상적 뿌리였던 ‘홍익인간(弘益人間)’, 교과서에서 배운 건국이념이 불쑥 떠오른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헬 조선’의 천연해독제가 아닐까 싶다.

숲도 좋지만 나무도 볼 때

3일이면 단군조선 개국 4348주년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들이 험한 역사의 강을 건너 더불어 숲을 이뤘다.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긴 했는데 막상 숲에는 손볼 데가 많다. 이런저런 수종(樹種) 안 가리고 숲을 늘리는 데 급급했던 세월,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공터들이 생겨났고 덩치 큰 나무 아래서 한 줌 햇빛을 그리워하는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지 못하면 숲의 건강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이제 숲과 함께 나무를 봐야 할 때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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