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英 아동작가 테리 프래챗, 사후 출간된 시리즈 유작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0일 14시 57분


코멘트
지난 3월 12일 영국의 가장 유명한 아동 작가 중 한 사람인 테리 프래챗이 6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1971년 ‘카페트 사람들’로 데뷔한 이후 여러 책으로 세계 아동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에서 37개 언어로 번역·출간됐고, 8500만부가 넘게 팔렸다.

2007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오랜 시간 투병해온 이 위대한 작가가 사망하자 많은 이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디스크 월드 시리즈의 향방을 궁금해 했다. 이 시리즈는 프래챗의 대표작으로 1983년 처음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40권이 출간됐다. 독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의 사후인 8월 27일,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고인의 유작인 ‘양치기의 왕관’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라 첫 한 주에만 5만부가 넘게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디스크 월드는 판타지 시리즈로 거대한 거북이의 등 위에 서 있는 네 마리의 코끼리가 각 모서리 끝을 받치고 있는 평평한 디스크 (원반) 모양의 가상 세계 속에서 사는 여러 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는 선한 마녀와 마법사, 그리고 이들을 해치려는 악한 요정들이 등장하고, 각 권은 다양한 디스크 월드를 지키는 인물들의 모험을 이야기한다.

혹자는 이 시리즈가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반지의 제왕’에 비교하기도 한다. 지난 32년간 디스크월드 시리즈는 항상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프로메테우스 상과 카네기 메달 등의 아동 문학상들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지막 작품인 ‘양치기…’에서는 ‘작은 자유인들’(2003년)에서 9세의 나이로 처음 등장했던 마법사 티파니 아칭이 다시 주인공으로 나온다. 위대한 마법사 웨더왁스는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티파니에게 초크 부족을 이끌어갈 모든 권한을 맡기고 죽는다. 16세로 성장한 티파니는 오랫동안 초크 부족들을 괴롭혀온 나쁜 요정들에 맞서 디스크 월드를 구해내기 위해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영국의 많은 성인들은 어린 시절 이 시리즈를 읽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 유력 신문들과 많은 독자들은 내용을 평하기 이전에 웨더왁스의 죽음에 충격을 표시했다. 한 독자는 “웨더왁스는 마치 프래챗의 분신 같았다. 그를 영원히 죽지 않을 불멸의 존재로 상상했었다”고 했다. 현명하고 용기 있는 외유내강형 캐릭터인 웨더왁스는 디스크월드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들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웨더왁스가 프래챗의 분신이었다면, 그녀의 후계자인 티파니는 프래챗의 딸인 작가 리아나를 상징하는 것일까? 한때 프래챗은 자신의 사후 리아나에게 디스크월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것을 당부했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리아나는 아버지가 창조했던 상상속의 세계를 스스로 매듭짓게 하는 편이 더 나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의 캣 브라운 기자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고인의 유작에 별 다섯을 주었다. “디스크월드에서 마법사들은 자신이 죽을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아는 능력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이후 오랫동안 ‘인간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안락사를 시사해왔던 프래챗은 마법사들과는 달리 자신이 정확히 언제 죽을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마지막 작품에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유종의 미를 남겼다.”

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