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의 神品名詩]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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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장니(天馬圖障泥). 문화재청 홈페이지
천마도 장니(天馬圖障泥). 문화재청 홈페이지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 오탁번(1943∼)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天馬)의 가쁜 숨결은
서라벌 뙤약볕 들녘을
다 지우고도 남아
치켜든 꼬리와 날리는 갈기가
오히려 가붓하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의 흰 몸이
하늘과 땅
아스라한 거리만큼 눈부시고
인동(忍冬)덩굴무늬 구름바다 사이로
왕국의 아침 찬란하게 밝아온다
장니(障泥)가 흔들릴 때마다
희고 붉은 흙빛 채색이
이냥 새뜻하여
신라 천년의 옛 사직은
또렷또렷 현재진행형이다
천마의 울음소리에
천오백년 깊은 잠을 자던
왕과 백성들이
천마표 타임머신 타고
광속(光速)으로 달려온다


보아라, 이 나라 역사의 높고 푸른 서라벌의 하늘을 온몸으로 휘감고 내닫는 천마의 웅비를, 용인 듯 불을 뿜고 봉황인 듯 갈기를 날리며 천둥 같은 울음을 터뜨리는 저 신라왕국의 장엄을, 백마금안(白馬金鞍)이라 했던가. 예로부터 흰말은 전설로 내려오는 상서로운 동물이었고 거기 얹히는 화려한 안장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로 그 페가수스가 서라벌에 살고 있었구나.

아마도 솔거 같은 화신(畵神)이 그렸으리라.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붙이고 다시 고운 껍질로 누벼 뿔을 세우고 날개를 치며 구름을 박차고 나는 흰 빛깔 천마를 그려 넣고 테두리는 붉고 검은 채색의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죽은 자의 영혼을 태워 천상의 세계에서 영생케 하는 신마(神馬)의 위풍당당이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이 ‘천마도장니’(국보 제207호) 한 장만으로도 신라 천년은 그 광채가 더욱 뻗어나고 오늘 이 땅의 융성까지도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하겠다.

아직도 서라벌 옛 도읍 계림(경주)은 작은 동산 같은 무덤들이 서로 뽐내며 봉우리를 치켜세우고 있는데 1973년 그 하나인 황남동 155호 고분을 열었을 때 이 그림이 나와서 이름도 천마총으로 지었다.

오직 신라의 그림은 이 한 장뿐, 그러나 시공을 넘어 꺼지지 않는 회화예술의 혼불은 무량한 것. 시인은 노래한다. “천오백년 깊은 잠을 자던/왕과 백성들이/천마표 타임머신 타고/광속으로 달려온다”고.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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