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신영]논문 저자 갈등의 합리적 해결을 기다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이공계 대학원생이라면 비슷한 고민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드물어요.”

“가장 불쌍한 것은 포닥(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말도 있어요. 언제 자리를 뜰지 모르고, 자신이 하던 연구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넘어가기도 쉽죠.”

최근 이공계 연구 논문의 저자권(authorship) 피해 사례를 심층 분석한 팀원의 기사(과학동아 10월호 기획 ‘논문에서… 내 이름이 사라졌다’)를 읽고 내게 직접 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들어온 반응의 일부다. 최근 이공계 연구의 규모가 커지고 공동 연구가 늘면서, 연구를 사실상 주도한 연구자가 부조리한 이유로 논문의 제1저자 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생물학, 의학 연구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가 7월 실시한 설문조사 ‘논문 저자권 관련 진단’의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 1164명 가운데 지난 3년간 논문 저자권과 관련한 갈등을 경험한 연구자 비율은 48%에 달했다. 거의 과반이 경험하는 흔한 일이라는 뜻이다. 담당 기자가 실제 피해자와 연구윤리 전문가를 인터뷰한 결과를 보면, 이런 갈등 가운데 연구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제1저자를 빼앗기는 문제였다.

과학자가 과학자 사회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논문을 통해서다. 논문은 과학자의 경력에서 핵심을 차지하며, 좋은 논문을 얼마나 내놓았느냐로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논문에서 주요 저자의 자리는 중요하며 그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

짧은 트윗이나 페이스북 게시물조차 자신이 한 말이 다른 누군가의 말로 바뀌어 유통되면 발끈하는 게 사람 심리다. 하물며 몇 년 동안 공 들인 연구 논문이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뒤바뀌는 일은 오죽할까.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버젓이 일어날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남의 논문에 쉽게 숟가락 올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다. 실적이 더 급한 동료나 제자가 있으면 다른 연구자의 논문에 슬쩍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주거나, 심지어 원래 연구자를 제치고 주인으로 올려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관행이라고, 혹은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담당 기자의 연구자 인터뷰에 동행했을 때도 가장 크게 놀란 게 이 부분이었다. 논문의 저자권 부정은 표절 등 다른 여러 연구 부정에 비해 ‘경량’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언이 여러 번 나왔다.

두 번째 이유는 무게추가 심하게 기울어진 권력 관계다. 저자권 갈등은 당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연구자의 장래를 틀어쥔 어떤 ‘권력자’가 존재하고 그들이 저자 문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초급 연구자가 일방적으로 겪는 갈등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권력자는 교수나 상급 연구자로, 대학원생이나 초급 연구자의 학위와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책임자는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저자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틈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저자 결정 과정에 자의적인 요소가 개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제1저자가 부조리하게 뒤바뀌는 극단적인 부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래서 생긴다.

기사에 대한 반응을 보면, 비슷한 사례를 보고 겪은 연구자의 성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음은 변화의 구체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담당 기자는 저자 사전등록제와 감시기구 설립 등 시스템을 체계화할 대안을 제시했다. 기사가 나간 뒤 여러 현장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다양한 찬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금씩 현장 분위기가 바뀌길 기대한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ashill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