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계곡 물향기… 수풀 웃음소리… “아기의 五感 깨어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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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 위해 숲으로 가는 부부들

숲의 정령은 도시의 것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무와 흙과 물이 주는 원시의 편안함으로 일상에 얽매였던 긴장의 끈을 풀어줄 뿐이다. 그 편안함과 고요함을 찾아 임신 부부들이 숲으로 떠난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태교다. 12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 양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숲의 정령은 도시의 것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무와 흙과 물이 주는 원시의 편안함으로 일상에 얽매였던 긴장의 끈을 풀어줄 뿐이다. 그 편안함과 고요함을 찾아 임신 부부들이 숲으로 떠난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태교다. 12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 양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숲 태교라고 별것 있나요. 그저 좋은 냄새 맡고, 나무 밑에서 쉬는 거죠.” 12일 기자가 ‘숲 태교’를 취재하기 위해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에 도착했을 때 휴양림 관계자가 한 말이다. 최근 젊은 임신부들 사이에서는 부부가 함께 휴양림을 찾는 숲 태교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산림청이 인터넷 접수창을 여는 순간 바로 신청이 마감될 정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고작 ‘냄새’와 ‘나무’라니. 이곳은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고서도 20km 이상 구부러진 산길을 달려와야 도착할 수 있다. 기자는 이날 부부 7쌍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숲 체험을 함께했다. 그 결과, 별도의 설명 없이도 처음 이야기한 냄새와 나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의 3시간은 치유, 그리고 태교를 위한 최적의 시간이었다. 》

나무 사이 하늘을 보다

산음휴양림 내 건강증진센터에 모인 임신 부부들은 30분 정도 간단한 설문을 작성한 뒤 숲길 걷기에 나섰다. 이들은 태어날 아기에게 보낼 예쁜 엽서도 썼다. 엽서마다 눌러 말린 야생화를 알록달록 꾸며 훗날 아이에게 선물해도 될 정도였다.

바닥에 앉을 수 있게 깔개를 하나씩 들고 숲으로 떠났다. 갈색 나무와 녹색 나뭇잎, 돌이 비쳐 검게 보이는 계곡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계곡 옆 덱에 예비 엄마 아빠 14명이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날 지도에 나선 전영순 산림치유지도사(54)는 “조용히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아기에게 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부부들의 태명(배 속 아이 이름)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엄마 아빠에게 선물처럼 나타난 아이라는 뜻의 ‘아토’(선물의 순 우리말), 엄마 배 속에 찰떡처럼 붙어 있으라고 ‘찰떡이’, 기쁨을 듬뿍 가져온 아이라고 ‘듬뿍이’ 등. 젊은 부부들이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숲 속 태교체조가 시작됐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임신부와 똑같이 배 위에 손를 올려놓고 분만에 대비한 숨쉬기 연습을 했다. 걸으면서는 부부 중 한 명이 눈을 감았다. 배우자의 손을 꼭 잡은 채 한 걸음씩 뗐다. 동행한 이순덕 산음자연휴양림 주무관은 “임신 부부들이 오히려 서로 말수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내리막이 있다거나 계단이 있다는 등 평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행렬은 계곡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숲이 깊을수록 눈과 귀, 코는 활짝 열렸다. 햇빛은 이제 숲의 푸른 녹색에 부딪쳐 눈부시지 않았다. 잘 썩은 나뭇가지는 숲의 향기를 풍성하게 했다. 바람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전 지도사는 오카리나를 꺼내 서유석의 ‘홀로아리랑’을 연주했다. 숲 속에 앉아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순간, 일상에 얽매였던 긴장의 끈이 풀렸다.

‘숲 태교’에 참가한 예비 엄마 아빠들이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분만용 숨쉬기 연습을 하고 있다. 양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숲 태교’에 참가한 예비 엄마 아빠들이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분만용 숨쉬기 연습을 하고 있다. 양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맨발 걷기와 숲 속 휴식… “함께한 태교는 처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1km 정도.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았다. 평평하지만 자갈이 많은 계곡 길은 신발을 신은 채 걸었다. 흙으로 된 나지막한 산길은 맨발로 걸었다. 처음에는 “발이 아프다”고 말하던 임신부들은 남편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올랐다.

산 위에는 잣나무 숲 아래 넉넉잡아 50명이 누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임신 부부들은 요가 매트를 깔고 누웠다. 빼곡한 잣나무 꼭대기 너머 하늘이 조그맣게 보였다. 여기서 부부가 함께하는 ‘아로마 마사지’를 했다. 남편의, 또 아내의 손을 잡고 손과 목 등에 오일을 발라 정성껏 주물렀다.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해온 ‘셀카봉’으로 찍고 있는 아내도 있었다. 이채현 씨(36)는 “단 한 번도 남편과 태교를 한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 마사지까지 받으니 너무 기쁘다”며 웃었다. 남편 김준호 씨(43)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모든 숲 태교 과정을 열심히 따랐다.

임신 부부들은 20분 이상 누운 채 하늘을 봤다.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자장가는 바람에 잣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수면제는 공기 속에 섞인 짙은 숲 향기였다. 숲 속 휴식을 마치고 이들은 계곡물에 발을 씻은 뒤 각자 헤어졌다. 헤어지며 외친 마지막 구호는 “순산 순산 순산, 파이팅!”이었다.

숲 태교에는 아이를 힘들게 가졌거나 노산(老産)인 부부가 많이 참여했다. 원태연 씨(35)는 어디를 가든 아내 이향은 씨(34)를 정성껏 챙겼다. 이들은 한 차례 유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받아 곧 떠난다. 다음번 이곳을 찾을 때는 남편에 건강한 아기까지 함께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심재호 씨(31)는 “숲에서 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아내보다 내가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산음자연휴양림은 숲 태교 외에도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희망의 숲’이나 젊은 직장인이 참여하는 ‘도약의 숲’, 가족을 위한 ‘화목의 숲’ 등을 운영하고 있다. 8명 이상이면 산음 치유의 숲(031-774-7687)으로 전화해 예약하면 된다. 예약 없이 찾아와도 누구나 똑같은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2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에 들렀다.
심박수·스트레스 모두 감소

숲에서 태교를 하는 것이 실제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이는 임신부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궁금한 주제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숲을 찾지만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2010년 임신부 51명을 대상으로 1박 2일 숲 태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 심박수나 스트레스 지수 등을 모두 측정한 결과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심박수 변이도는 숲 태교를 하기 전 평균 85.27에서 82.49로 낮아졌다. 심신이 불안할수록 심박수가 바뀌는 폭이 커지는데, 이 수치가 낮아질수록 심신 안정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 지수도 체험 전 평균 17.91에서 15.19로 낮아졌다.

산림청 관계자는 “2007년부터 산림치유 시설을 조성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5곳을 열었고 앞으로 30곳을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라며 “많은 국민이 가까운 숲을 부담 없이 이용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평=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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