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남의 일 같은 충청도 가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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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신기하리만큼 관심 갖는 사람이 없다. 실력자가 집에 누굴 불러 저녁밥을 먹었는지는 중요한 뉴스지만 어떤 동네에서 마실 물이 모자란다는 소식은 ‘태평성대’ 대한민국에선 듣기 싫은 소리인가 보다.

보령시 서산시 당진시 서천군 청양군 홍성군 예산군 태안군, 이렇게 충청남도의 8개 시군에선 추석 연휴 다음 주인 10월 5일부터 제한 급수가 시작된다. 홍성군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 격일로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물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른 지역 역시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물 공급을 크게 줄여야 할 상황이다.

이 일대 물 공급의 핵심 시설인 보령댐의 저수율이 22일 기준으로 23.9%에 불과해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탓이다. 봄 가뭄이 심각하다고 아우성치던 6월 대통령이 소방차 호스로 논에 물을 뿌리며 항구적인 가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불과 석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충남 서부는 소방차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가뭄 피해를 보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란 걸 보여 준다. 충남도 차원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지만 물을 만들거나 끌어올 방법은 나오질 않고 있다. 그저 홍수 날 만큼 폭우가 쏟아지길 기다릴 뿐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나, 종종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동네 입구로 출동한 급수차 앞에 고무 대야를 들고 긴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그런 장면이 2015년에 다시 등장하게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여러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자연재해나 대형 참사 현장을 숱하게 봐 왔지만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가뭄을 선택한다. 부지불식간에 참사를 당하는 것도 끔찍하다. 하지만 빤히 눈에 보이는데 손쓸 방법 없이 생명이 말라붙는 걸 지켜보는 것만큼 참담한 일도 없다. 단박에 숨을 끊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서서히 죽어 가는 자신의 몸을 봐야 했던 사도세자의 처지처럼 말이다.

수도권에선 공급할 물이 없어 아파트나 공장을 짓지 못하는 현실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봄 가뭄이 전국을 뒤덮었을 때 뾰족한 대책이 없었고 농민들은 나라에 기댄 게 아니라 그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길 기다려야 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홍수처럼 눈에 보이는 재해가 아니라 그런지 가뭄 피해 주민을 위해 성금을 모은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충남 지역에선 ‘지금 최악의 가뭄에 시달린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 말이 사실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가을 겨울 동안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적고 다른 지역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수량이 평년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내년 봄이 되면 분명 올봄보다 더 치명적인 가뭄이 닥쳐올 게 분명하다. 운 좋게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겠지만 저수율이 매우 낮고 예년 수준의 비가 내릴 것으로 가정한다면 사상 최악의 가뭄이 발생할 시점은 지금이 아니라 몇 달 뒤 다가올 내년 봄이 될 게 틀림없다.

속이 뒤집히는 건 이 대목이다. 빤히 보이는 이 암담한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수자원을 어떻게 개발해 누구를 위해 쓸 계획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댐이란 시설은 마치 환경 파괴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붙인 지 오래다. 4대 강 사업으로 수자원을 확보한 것은 분명한 성과인데도 환경파괴론자로 몰리기 싫어서인지 그 가치와 향후 활용 방안을 말하는 전문가가 드물다. 북한도 임진강 유역에만 댐과 보 5개를 지어 놓았을 정도지만 매년 독해지는 가뭄을 겪고 있는 남한에선 뭉툭한 대책도 찾아보기 힘들다. 10월엔 충남의 몇 개 시군에서 제한 급수가 진행될 뿐일지 모르지만 내년, 그리고 그 다음 해엔 또 어느 지역에서 목마름에 시름할지 걱정이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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