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어 또… ‘악마 기둥에 돌 던지기’ 행사 중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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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성지순례 압사사고]미나지역에 순례자 텐트 16만개
‘돌 던지기 의식’ 성지순례의 절정… 좁은 공간에 인파 몰려 사고 위험

24일 오전 9시, ‘텐트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메카의 동쪽 미나 지역에서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너도나도 미나의 북서쪽 끝에 있는 ‘악마의 기둥 건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매년 이슬람권 최대 연례행사인 성지순례(하지) 의식 중 하나이면서 가장 위험한 행사로 알려진 ‘악마 기둥에 돌 던지기’를 위해 모인 인파였다.

순례 중 기도와 명상 단식으로 지친 신심 깊은 신자들의 아우성이 한꺼번에 들린 순간 갑자기 성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성지순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의식에 참석하려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앞서 가던 사람들이 넘어졌고, 그 위로 순례자들이 계속해서 넘어지고 깔리기 시작한 것.

곳곳에서 도와달라는 아우성과 함께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구조요원들은 여기저기서 이흐람(Ihram·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로 입는 이음매가 없는 순례복)을 입은 순례자의 가슴을 압박하며 응급 처치를 하는 등 다급한 시간을 보냈다. 사고 현장에는 옷가지와 신발, 소지품 등이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는 실신한 순례자들도 많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참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사고가 난 후 5시간이 지난 뒤에도 현장에는 희생자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현장을 지켜본 엘 카타트니 씨는 “많은 시신들이 그때까지도 그대로 길거리에 있었다. 잠깐 지나는 사이에도 20∼30대의 구급차가 내 옆으로 지나갈 정도로 다급했다”고 CNN에 전했다.

사고 현장에선 사우디 군인들과 야광, 주황색 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이송하거나 심폐소생 등의 응급 처치를 했다. 사고 현장 상공에는 헬기가 날아다녔고 주변에선 구급차 수십 대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사고는 미나의 204번과 223번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고 알자지라와 AFP통신이 전했다.

전날 메카의 카바 신전 가운데 있는 성석에 입을 맞춘 뒤 주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7바퀴 도는 행사를 마치고 미나로 자리를 옮긴 순례자들은 텐트를 치고 기도를 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미나에는 16만여 개의 텐트가 운집해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날 정오경 아라파트 평원으로 자리를 옮겨 기도를 한 뒤 순례자들은 무즈달리파흐에서 주운 자갈 7개를 미나로 가지고 돌아와 마귀와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에 던지는 의식을 거행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악마의 기둥에 돌을 던지는 행사는 성지순례의 절정으로 통한다. 하지가 마무리될 때 양을 제물로 바치는 ‘이드 알아드하’(희생제)가 이어진다.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에서는 한꺼번에 좁은 공간에 인파가 몰리면서 대형 압사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2006년 1월에도 미나에서 악마의 기둥에 돌 던지기 행사 도중 사고가 발생해 360여 명이 숨졌으며 2004년엔 순례객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져 244명이 숨지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1990년에도 순례객 14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압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우디 당국은 트위터를 통해 현재 미나의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으며 순례자들이 사고 지점을 피해 우회로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지순례는 이슬람교도가 지켜야 하는 5가지 기둥(실천영역) 중 하나로 이슬람교도는 평생 한 번은 이를 수행하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여긴다. 사우디 당국은 올해 성지순례에 국내외에서 이슬람교도 200만 명이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찾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선 올해 16만8000여 명이 성지순례에 나선 것으로 집계됐다.

사우디 정부는 이번 하지 기간 중 테러와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소방·구조 인력, 경찰 등 10만 명을 배치했지만 참사를 막지는 못했다. 메카와 메디나에는 실시간 감시를 위해 폐쇄회로(CC)TV가 5000대 설치됐고, 사고가 발생한 미나 계곡에는 임시 상황본부까지 설치돼 있었다.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말레이시아, 이집트 등 메카로 성지순례를 많이 가는 국가는 자국민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 악마의 기둥 의식 ::

이슬람 성지순례 코스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의식. 메카 동쪽의 미나에 위치한 3개의 돌기둥에 자갈 49개를 7번에 나눠 던지며 “악마여 물러가라”라고 외치는 행사이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려 하다가 돌을 던져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미나는 아브라함이 악마를 물리친 장소로 여겨진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돌을 던지는 탓에 그동안 압사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하지만 상당수 이슬람교도가 성지순례를 하다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탓에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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