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 한국 최고 작품… 일본인도 읽게 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20권 전질 일본어판 내는 김승복 在日출판사 대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토지의 일본어판 번역 작업을 추진 중인 김승복 쿠온 대표(왼쪽)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재일교포 소설가 김석범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승복 대표 제공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토지의 일본어판 번역 작업을 추진 중인 김승복 쿠온 대표(왼쪽)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재일교포 소설가 김석범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승복 대표 제공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첫 문장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작가가 25년 동안 집필했으며 원고지 3만1200장(총 20권)에 이르는 역작이다. 이 책 전부를 일본어로 완역하는 대작업이 시작됐다.

일본에서 한국 서적 전문 출판사 ‘쿠온’을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46)는 24일 통화에서 “토지 일본어 번역 작업에 대해 6월 작가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학관 관장의 허락을 받았다”며 “조만간 정식 계약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편집자와 번역자 등 일본인 3명이 심도 있는 번역을 위해 강원 원주시 토지문학관과 경남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등을 둘러보고 왔다”며 “완역에 필요한 기간을 7년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일단 내년 가을 1권과 2권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출간과 동시에 심포지엄 등도 계획하고 있다. 일본어판 토지는 1980년대에 1∼5부 중 1부만 발간된 바 있으며 최근 학생용 축약본이 나왔지만 완역본이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박경리는 생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철두철미한 반일 작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민족적 색채가 강한 소설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토지’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반일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반일 여부를 떠나 작품으로서의 완결성, 인물들의 디테일 등의 측면에서 한국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 만큼 꼭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번역 출간에 드는 비용은 1억 엔(약 10억 원)가량. 시간과 비용을 감안했을 때 힘든 작업이 성사된 것은 비용의 절반을 재일교포 의사이며 교육자인 김정출 청구학원 이사장(69)이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재일교포들이 이런 책을 꼭 읽어야 한다”며 흔쾌히 사비를 털어 번역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2011년 5권짜리 토지 축약본이 발행되었을 때도 직접 감수를 맡았을 정도로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일본인들이 이런 작품을 모르고 죽는 것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한 행사에서 김 이사장을 만나 의기투합했고 초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며 “하지만 나머지 5억 원은 추가로 스폰서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최근 혐한(嫌韓)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가운데서도 2010년부터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은희경 한강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 등 한국 대표 작가의 책 13권을 번역 출간했다. 7월에는 북카페 ‘책거리’를 열고 독서회와 시인 낭독회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2011년에는 ‘케이북(K-BOOK) 진흥회’를 결성해 매년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 책 50선’을 내고 있다. 1991년 일본으로 유학 와 25년째 살고 있는 김 대표는 “일본 책이 한국에 번역되는 것은 매년 800∼900권에 이르지만 반대로 일본에 소개되는 한국 책은 20권 안팎에 불과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