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訪美]“알리바바의 ‘열려라 참깨’ 주문처럼, 중국 門 활짝 열릴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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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앞두고 ‘경제 굴기’ 행보

23일(현지 시간) 오전 8시 반경,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웨스틴 호텔 대회의실에 미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을 비롯해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애플의 팀 쿡, 월트디즈니의 밥 아이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바라,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등이었다. 중국 기업으로는 완샹, 텅쉰, 하이얼, 바이두 경영진이 참석했다. 행사의 사회는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이 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하는 백악관 행사에서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글로벌 경제 거물들이 방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한 ‘미중 경제인 원탁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시 주석 숙소 내 회의실을 찾은 것. 그만큼 중국의 ‘경제 굴기’에 대한 미 경제계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인사말에서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를 홍보하려는 듯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의)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면 열렸다 다시 안 닫히는 것처럼 중국의 대외 개방도 점차 커질 것이다. 개방 없는 진보는 없다”며 중국 경제가 여전히 폐쇄적이라는 서구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중국이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해 너무 허술하다는 여론을 반영해서인지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버핏 회장 등이 시 주석에게 “미국 기업이 자유롭게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하자 시 주석은 한술 더 떠 “(오히려) 미 정부가 민간 업체들이 첨단기술 물품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데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경제 통계까지 인용해 가며 중국이 세계 경제를 이끄는 ‘큰손’임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6만5000여 개 미국 기업이 총 760억 달러(약 90조7000억 원) 상당의 투자를 하고 있다”며 “역시 미국 44개 주에 진출한 1600여 개 중국 기업은 미국에서 8만여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봄 개장할 중국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에 대해서는 “2000년대 말 다른 관리들은 중국 문화에 더 기반을 둔 (다른) 프로젝트를 밀고 있었지만 나는 다양한 문화에 바탕을 둔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필요하다고 보고 찬성표를 던졌다”고 했다.

이어 시 주석은 보잉사를 찾아 ‘큰 강에 물이 있어야 작은 개울에도 물이 넘친다(大河有水小河滿)’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중미 양국 관계가 좋아야 중미 기업 간 합작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737기종 등 여객기 300대 구매 약속을 재확인했다.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사 CEO는 “중국에 보잉사 조립 공장을 짓겠다”고 화답한 뒤 시 주석이 방미 때 타고 온 보잉 747기와 동일한 기종에서 떼어낸 창틀로 시 주석 부부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이어 시 주석은 MS 본사에서 열린 ‘미중 인터넷 산업 포럼’에 참석해 “안전한 사이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미중이 협력해야 하며 각 나라의 현실에 맞게 국내 인터넷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엔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비롯해 IBM 인텔 시스코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임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국계 부인을 둔 저커버그는 시 주석과 1분여간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시 주석과 만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MS 측으로부터 ‘류린하이(柳林海)’호 모형을 선물로 받았다. 이 배는 1979년 1월 미중 수교 후 그해 3월 25일 상하이(上海)를 출발해 4월 18일 시애틀에 도착한 배로 당시 수십 년 동안 지속됐던 미중 간 항해 중단에 마침표를 찍어 미중 수교의 상징이 됐다. 시 주석은 칭화(淸華)대와 워싱턴대가 함께 세운 ‘글로벌 창신교류학원’에 수삼나무 묘목을 기증했다.

시 주석의 이 같은 ‘비즈니스 굴기’ 행보는 25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의 경협 증진을 극대화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회담을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날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친척을 만나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시 주석은 이날 시애틀 일대를 자신의 안방인 양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오가며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지 언론은 시 주석의 동선을 ‘회오리바람(whirlwind)’이라고 평했을 정도. 시 주석은 이날 하루 동안 시애틀(토론회)→에버렛(보잉사)→시애틀(오찬)→레드먼드(MS사)→타코마(링컨고교)→시애틀(중국 교포 만찬)로 200여 km를 이동했는데 경호 및 수행 차량 30여 대가 따라붙으면서 시애틀 일대는 교통 정체가 반복됐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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