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심 무죄 KT 前회장, 검찰의 표적수사 의심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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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배임의 고의가 있거나 비자금을 불법 영득(領得·자기 것으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수사 착수에서 기소 때까지 6개월 동안 이 전 회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네 차례나 소환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당하자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 전 회장 수사는 처음부터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로 볼 소지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취임한 이 전 회장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찍어내기’ 차원에서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진 정황 때문이다. 이 전 회장 역시 낙하산으로 내려와 지나치게 확장적인 경영을 했다는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는 있다. 비록 1심이지만 40여 곳을 압수수색하고 70여 명을 소환할 정도로 과잉 표적수사를 했는데도 무죄가 난 것을 검찰은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춰 수사 대상을 선정해 미리 짜 맞춘 결과물을 내놓으려고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면 반드시 뒤탈이 난다. 수사 과정에서 수사대상자의 인권 침해와 해당 기업의 피해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 전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무죄로 유지된다면 무리한 수사를 한 검찰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에서 검찰이 기업인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대는 배임죄 적용에 대해 확실하게 제동을 건 것도 의미가 있다. 검찰은 이 전 회장 재임 때 3개 벤처업체의 주식을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들여 103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KT의 투자 결정은 합리적 의사결정이었고 기업 가치를 낮게 보는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배임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업인의 경영상 판단에 대해 검찰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해 처벌해 온 수사 관행은 잘못된 것이다. 차제에 형법의 배임죄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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