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나홀로族’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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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대치동 학원가… 같은 듯 다른 ‘한가위 두 모습’
마지막 시험 될지 몰라 총력… 고시촌 “차례보다 국제법이 중요”

5년째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남상섭 씨가 서울 관악구 자신의 자취방에서 공부하고 있다. 남 씨는 올 추석에 고향인 전남 구례군에 내려가지 않고 고시촌에 머물며 계속 공부할 예정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5년째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남상섭 씨가 서울 관악구 자신의 자취방에서 공부하고 있다. 남 씨는 올 추석에 고향인 전남 구례군에 내려가지 않고 고시촌에 머물며 계속 공부할 예정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오후 ‘신림동 고시촌’으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의 한 서점 벽면은 학원의 홍보 전단으로 도배돼 있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공직적격성평가(PSAT), 변호사시험 관련 특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를 이뤘던 사법시험 특강 전단은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대학동의 한 사법시험 학원은 올해부터 과거 오프라인으로 실시하던 추석 특강을 인터넷 강의로 대체하기로 했다. 줄어드는 사법시험 수강 수요에 맞춘 자구책이다.

같은 날 인근의 한 사법시험 학원의 3층 강의실.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는 학생 7명만 모의고사를 풀고 있었다. 7, 8년 전만 하더라도 수강인원이 넘쳐 한 과목에 2개 강의실을 화상으로 연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강의실의 10분의 1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강의실 분위기는 적막했지만 학생들은 1차 시험과목인 민법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학원 관계자는 “내년을 마지막으로 1차 시험이 없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2차 시험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두고도 1차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를 나흘 앞뒀지만 신림동 고시생에게 명절 연휴의 기쁨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취재진이 만난 고시생은 각자 “공부를 좀 더 하려고”, “친척을 만나 스트레스 받을까 봐”, “부모님께 죄송해서” 등의 이유로 명절 귀성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 남상섭 씨(40)는 “고시생에게는 민족의 명절보다 국제법(1차 시험 선택과목)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모 씨(33)도 “과거에는 고시생끼리 식사도 했는데 올해는 혼자 목욕탕에 가서 마음을 다잡은 뒤 평소처럼 공부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사법시험 준비생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더 커 보였다. 사법시험 폐지에 맞춰 점차 합격자 수를 줄이면서 남은 응시자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3만여 명 수준이었던 신림동 사법시험 준비생은 현재 4000명 정도로 줄었다. 올해로 9년째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강재훈 씨(32)는 “올해 1차 시험에 낙방하고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을 알아봤지만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결국 포기했다”며 “당장 내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9급 법원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학원가와 서점가도 타격을 입은 건 마찬가지. 대학동에서 20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62·여)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전체 책의 70% 정도가 사법시험 관련 서적이었지만 지금은 10%도 안 된다”며 “사시생이 줄면서 매출도 30∼40%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폐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존치를 주장하는 준비생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권민식 대표(36)는 “학력, 빈부, 나이에 관계없이 5만 원만 있으면 누구나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면서 “평균 등록금 1500여만 원에 달하는 로스쿨에 비해 공정한 시험”이라며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했다. 2017년 2차 시험만 치러지고 사법시험은 전면 폐지된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강홍구 기자
#사법고시#신림동고시촌#대치동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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