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작고 2주기…‘청년 최인호’를 만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23일 21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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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추모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2권 출간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 기록한 문학적 자서전
50년 전 미발표 습작 원고들도 세상 속으로


1958년 2월3일자 동아일보 4면 ‘이 주일에 뽑힌 글’이란 코너에 ‘화롯가’라는 글이 실렸다. 동시였다. ‘오손도손 화롯가에 손이 모였네/ 우라부락 험상궂은 우리 형님 손/ 매끈하고 백설같은 우리 누나 손/ 장난쟁이 동생 손은 까만 손이죠/ 옴방좀방 화롯가에 손이 모였네/ 놀다말고 한목 끼운 동생 손이랑/ 험상궂고 보기 싫은 형님 손까지/ 모두모두 모여있네 옹기 화롯가’ 동시 뒤엔 짤막한 평이 실렸다. ‘둘째 연에 가서 자수를 맞추느라고 표현이 군색하였었는데 그 둘째 연의 둘째 구와 끝절을 고쳤으니 잘 따져보게’ 지은이는 서울덕수초등학교 6학년3반 최인호였다.

최인호라면? 그렇다. 이 소년이 커서 대 문호 ‘소설가 최인호’가 됐다. ‘화롯가’라는 동시는 활자로 발표된 최인호의 최초의 작품이다. 최인호가 불귀의 몸이 된 지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13년 ‘눈물’, 2014년 ‘나의 딸의 딸’ 등 매년 유고집이 나왔다. 작고 2주기를 맞아 또 한 권의 추모집이 독자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故 최인호 작가 2주기 추모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최인호 지음 l 여백 펴냄)가 그것이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는 최인호 작가가 7년 전 구상했던 책이라고 한다. 책 제목도 작가가 지었단다. 오스트리아의 유명 지휘지 카를 뵘이 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는 2권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시간이 품은 나의 기억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최 작가의 유년과 청년 시절에 대해 기록한 문학적 자서전이다. 6.25 피난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린 10대 시절 그리고 하루에 한 편씩 소설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던 청년시절, 연애이야기, 신춘문예로 등단해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 받은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담았다.

2부는 ‘시간이 품은 나의 습작들’로 50년 전 미발표 습작 원고들을 담았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작품부터 대학교 시절 학교신문과 교지 등에 실린 글들이다. 문학천재가 어떻게 성장해 우리시대 대표적 소설가로 커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최 작가의 문학적 세계관과 감수성의 원천을 살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책에 목차가 없다. 최 작가의 원본을 날것으로 보여주려는 배려이리라. 책을 펴낸 출판사 여백이 지난해 여름부터 작가의 글과 자료들을 모아 출간했다. 옛날 사진, 습작노트,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영화표 등 최 작가의 흔적이 있는 것은 모두 모았다고 한다. 암호 같은 악필로 유명한 육필원고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재답게 글이 재미있어 술술 넘어간다. ‘피식’ 웃음도 나오는 장면도 잦다. 9월25일 작고 2주기를 맞아 ‘최인호의 향기’를 다시 느낄 수 있어 참 반갑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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