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 미술도 아닌 모호한 그 무엇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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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기획전 ‘아웃 오브 더 박스’전

건축사사무소 53427 고기웅 소장의 ‘Simply Complex’. 3차원(3D) 프린터로 개별 생산된 연결부 부재와 대량 생산된 선형 부재를 조합해 곡면의 공간감을 구현했다. 금호미술관 제공
건축사사무소 53427 고기웅 소장의 ‘Simply Complex’. 3차원(3D) 프린터로 개별 생산된 연결부 부재와 대량 생산된 선형 부재를 조합해 곡면의 공간감을 구현했다. 금호미술관 제공
건축하기는 더없이 행복한 작업이지만, 건축에 대해 대중이 품은 어렴풋한 호감은 대개 오해에 기인한다. TV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가 보여주는 건축의 이미지가 현실의 건축과 딴판인 탓이 꽤 크다. 건축을 주제로 삼은 전시는 어떨까. 드라마 또는 영화에 비해 헛스윙이 매우 적은 편이다. 하지만 12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여는 ‘아웃 오브 더 박스: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전은 보기 드문 헛스윙 쪽에 가깝다.

대나무, 유리, 종이, 벽돌, 플라스틱, 스테인리스스틸 등의 건축 재료를 30, 40대 젊은 건축가 6팀이 하나씩 맡아 전시 재료로 쓴다는 건 명료하고 매력적인 발상이다. 결과는 아쉽다. 4개 층의 전시실은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건축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음을 확인시킨다. 외양의 상상, 말과 글의 개념 얽기는 건축의 시작조차 아니다. 어정쩡한 구상과 빠듯한 예산을 던져놓고 건축가에게 ‘좋은 집 지어주세요’라고 부탁한 뒤 손놓고 물러앉은 건축주에게는 공간의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건축 전시 기획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기획담당자와 전시 참여 건축가에게 확인한 참가자별 전시지원금은 약 600만 원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재료와 공간을 떠안은 건축가들의 노고가 짐작된다. 스스로 노동력을 더하고 재료 지원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면 인건비와 재료비를 해결하기조차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건축가는 “1200만 원 정도 지출했다. 개인적 인맥으로 얻은 지원금을 더해 부족한 비용을 충당했다”고 말했다.

특정 재료의 성격을 드러내는 ‘작은 건축물’을 실제로 만들어 선보이는 전시를 작정했다면, 기획자가 간과한 것은 건축물에서 ‘규모’라는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건축 공간의 넉넉한 규모는 그 하나만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이의 심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1층의 대나무 파빌리온, 2층에 깔아놓은 벌집 구조의 종이판재 언덕, 3층 전시실의 플라스틱 골함석 구조물, 지하 1층의 스테인리스스틸 이글루는 모두 나름대로 흥미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결같이 ‘작아서 아쉽다’.

한 참여 건축가는 “미술관 측과 소통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다. 오랜 연속성을 갖고 작업하는 미술 작가의 전시와 달리 새로운 공간을 건축 현장보다 빠르게 실물로 지어내야 했던 건축가들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을 내세웠지만 건축의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세부 도면이 부재했던 기색이 역력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건축#고기웅#공간감#선형#금호미술관#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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