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자마자 폐쇄된 다리… 예산낭비 ‘황당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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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5부<下>‘관리 사각지대’ 지방 재정

새 다리 진입로 경사 심해 ‘차량 통행금지’ 경남 김해시 상동면 봉암마을 입구에 지난해 완공된 
봉암1교(사람이 서 있는 오른쪽 부분). 교량 밑을 가로지르는 대포천의 하천기본계획에 맞춰 건설하다 보니 기존 다리(차가 지나가는
 부분)와 진입도로에 비해 1∼2m가량 높게 건설됐다. 사고 위험 때문에 시가 교량 진입로에 말뚝을 박아 둬 새 다리로는 차량이 
다니지 못한다. 김해=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새 다리 진입로 경사 심해 ‘차량 통행금지’ 경남 김해시 상동면 봉암마을 입구에 지난해 완공된 봉암1교(사람이 서 있는 오른쪽 부분). 교량 밑을 가로지르는 대포천의 하천기본계획에 맞춰 건설하다 보니 기존 다리(차가 지나가는 부분)와 진입도로에 비해 1∼2m가량 높게 건설됐다. 사고 위험 때문에 시가 교량 진입로에 말뚝을 박아 둬 새 다리로는 차량이 다니지 못한다. 김해=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경남 김해시는 상동면 봉암마을 입구의 다리가 너무 좁아 차량이 양방향으로 다니기 어렵다는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해당 교량 옆에 새 다리(봉암1교)를 놓았다. 하지만 정작 다리가 완공되자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 다리가 기존 다리보다 1∼2m가량 높은 데다 진입로가 짧고 경사가 심해 달리던 차가 진입하기에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해시는 새 다리 앞에 말뚝을 박아 차량 진입을 막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 다리는 경운기마저 다닐 수 없어 인도로 쓰고 있는데, 그마저 경사가 높아 어르신들은 다니기 불편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비효율이 낳은 ‘기형적’ 교량

봉암1교가 이처럼 터무니없이 높게 지어진 건 하천법 시행령상 하천기본계획을 정확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하천기본계획은 10년에 한 번씩 하천의 적정 수위와 홍수 대비 시설들을 정해 놓는 규정이다. 최신 규정을 제대로 따르려면 다리는 물론이고 하천 옆 둑의 역할을 하는 도로 등의 높이도 함께 조정해야 하지만 이는 하천기본계획을 총괄하는 경남도와 협의해야 한다. 다리 하나 때문에 도내 전체 하천기본계획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기 힘들었던 김해시는 규정에 맞춰 다리만 놓았다. 결국 범람 대비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기형적’ 교량만 탄생하고 말았다. 시 관계자는 “차량 통행을 위해 올해 진입로 포장공사 등을 할 예정이었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내년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지방자치제가 올해로 20년을 맞았지만 지자체들이 시행하는 사업 중에는 이런 주먹구구식 사업이 적지 않다. 이런 사업들은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져 지방정부를 빚더미에 앉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반면 전남의 한 기초지자체는 창의적으로 행정을 진행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를 쉬쉬하고 있다. 이 지자체는 길이 100m의 새 다리를 하천기본계획에 맞춰 놓으려고 했더니 기존의 낡은 다리보다 4m 정도 높아지게 됐다. 당초 26억 원을 예상했던 사업 예산이 이대로라면 56억 원까지 늘어날 판이었다.

6개월간 표류하던 사업은 하천의 과거 범람 데이터를 직접 수집한 담당 과장의 노력 덕분에 해결됐다. 교량 높이를 1m 낮춰도 범람을 막을 수 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설계를 추진했고 실제 예산은 30억 원으로 줄었다. 진입로도 길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적었다. 그렇지만 해당 과장은 “지금이라도 상급 기관이 감사를 나온다면 하천기본계획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를 피할 수 없다”면서 “대부분의 지방공무원은 상급 기관의 규제와 감사에 시달리다 보니 ‘보신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돈은 펑펑 쓰고 빚은 ‘나 몰라라’

지역 단체장들의 선심성 예산과 재원 확보 방안 없이 추진되는 사업들도 지방재정을 곪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추진해 오던 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을 2017년 착공을 목표로 정상 추진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총 2115억 원을 들여 1800석 규모의 오페라 전용극장을 짓는 프로젝트다. 롯데그룹이 1000억 원을 기부했지만 나머지 비용과 연간 200억 원의 운영비를 시가 부담해야 해 재정 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3년 감사원으로부터 오페라하우스 예정지에서 약 7km 떨어진 국제아트센터와 기능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산시 측은 “오페라하우스 운영비를 연간 35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어 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국제아트센터는 일반 가수 공연장이라 중복 우려도 없다”고 주장했다.

재정 적자에 대한 대책 없이 대규모 사업을 추진한 뒤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행태도 문제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강원이 지역구인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 올림픽 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명칭을 ‘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바꾸는 게 핵심인 개정안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평창 올림픽 시설을 관리하는 데 국민체육진흥기금을 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중앙정부가 이미 11조 원이 넘는 올림픽 시설 건립 비용의 75%를 부담하기로 한 상황에서 올림픽이 끝난 뒤 관리비용까지 세금으로 메우는 셈이다.

○ 지자체 역량 키우고 재량권 늘려야

정부는 올해 4월 인천과 부산, 대구, 강원 태백시 등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높은 지자체 4곳을 처음으로 ‘재정 위기 주의 단체’로 지정하는 등 지방재정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지자체 예산을 일일이 감독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지방자치제 도입 목적과도 맞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이 때문에 지방공무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게 예산 낭비를 막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대기업들이 지방공무원들의 역량이 떨어져 공장을 짓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며 “지방공무원들의 자질과 사명감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기초단체장은 “정부보조금을 아껴 봤자 남은 돈은 무조건 정부에 반납해야 하다 보니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는 일이 반복된다”며 “최초 예산을 지원받은 분야와 유사한 사업에 한해서라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면 그만큼 예산 낭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철중 tnf@donga.com / 김재영 기자
#다리#예산낭비#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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