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다양해진 법정 다툼… 기업들 생존 건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5대그룹 소송폭발 시대]<上>소송 왜 급격히 늘어나나

국내 화학업계 1위인 LG화학이 고흡수성수지(SAP)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 가자 해외 경쟁 기업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SAP는 아크릴산 등으로 만든 백색 분말 형태의 합성수지로 1g의 소재로 500g의 물을 흡수할 수 있어 기저귀, 생리대 등에 주로 사용된다. SAP 분야 세계 1위인 일본의 닛폰쇼쿠바이는 지난해 7월 “LG화학이 제조방법 등에 관한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LG화학 측은 “닛폰쇼쿠바이 측 특허는 이미 널리 알려진 선행 문헌들에 의해 특허의 신규성이나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맞서고 있다. 올해 7월 법원이 감정 절차에 들어가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업계 국내 1위인 삼성전자나 LG화학 등을 상대로 한 외국 기업 등의 특허소송은 ‘회사 운명을 좌우하는 소송(Bet-The-Company)’으로 그 결과에 따라 파장이 크다. 다국적기업인 코닥은 1976년부터 14년간 진행된 폴라로이드와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한 뒤 배상금과 공장 폐쇄 등을 더해 3조 원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2011년 애플과 삼성 특허 분쟁도 스마트폰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 삼성,건수 적지만 덩치 큰 소송 많아

삼성은 소송액이 최근 4년 반 사이 5대 그룹 전체 소송액(2조371억 원)의 70.3%인 1조4328억 원에 이른다. 소송 건수로는 2551건 중 14.0%인 358건이었다. 건수는 적지만 덩치가 큰 소송이 많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개발 프로젝트였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무산과 관련된 소송이 대표적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1월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를 상대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부지 ‘철도시설 철거 및 토양오염원 처리사업’ 비용 1008억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는 진행 중인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이 16건(168억 원)이나 된다.

지식재산권을 놓고 직원과 기업 간 분쟁도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삼성전자에서 퇴직한 최모 씨는 올해 7월 “재직 중 ‘천지인 한글’을 발명해 삼성전자 명의로 특허등록을 마쳤는데 회사가 직무발명보상금을 제대로 안 줬다”며 100억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직무발명 보상금 소송은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LG전자 수석연구원이었던 이모 씨는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원천기술 개발에 따른 발명 보상금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억6600여만 원을 받게 됐다. 지난해 2월에는 전직 LG전자 연구원이 와이파이(Wi-Fi) 원천기술 발명에 따른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며 1억여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LG의 지식재산권 분쟁은 전체 분쟁 건수의 10.7%(12건)를 차지하고 분쟁액은 20.6%(111억 원)에 이른다.

○ SK는 소송 건수 많고, 롯데는 소송액 폭증

5대 그룹 중 분쟁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SK그룹이다. 전체 2551건 중 SK그룹 관련 분쟁은 1327건(52.0%)으로 절반을 웃돌았다. 다만, 분쟁 건수에 비해 분쟁액은 2695억 원으로 5대 그룹 전체 소송액의 13.2%였다. SK그룹 전체 소송은 95.8%가 SKT에 몰려 있다. 유형별로는 SKT 5년 치 소송 1272건 가운데 904건(71%)이 사용료 소송이었다. 개인을 상대로 미납 통신요금을 청구하는 소액 소송, 개인 이용자가 해외 로밍 등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아 제기하는 소송 등이 주를 이뤘다. 염용표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개인정보 유출, 연비 소송 등 소비자에 의한 소송이 기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되고 있다”며 “한 건은 소액이지만 유사한 사례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고 지적했다.

재계 5위인 롯데는 소비자나 거래 기업 간 소송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11년 61억 원(71건)이었던 소송액은 2012년 282억 원(127건), 2013년 329억 원(111건), 2014년 1218억 원(90건)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 중 물품대금 분쟁이나 손해배상 사건이 273건으로 59.3%를 차지했고, 소송액은 전체 대비 38.7%(776억 원)였다. 서울 잠실 롯데쇼핑몰 등에 입주한 상가 임차인이 롯데 측과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임대료 등을 다투는 소송도 다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소송의 세 건 중 한 건(건수 대비 36.7%, 분쟁액 31%)은 근로관계 소송이었다. 현대차 사내 하도급업체 근로자 117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지난해 9월 “직원 994명이 현대차 소속 근로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달라는 통상임금 소송도 다수 진행 중이다.

근로 관계 소송은 다른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도시바삼성으로 옮긴 직원 246명이 “근로자 동의 없이 이뤄진 전적은 무효인 만큼 삼성전자 근로자임을 확인하고 1인당 2000만 원을 달라”고 소송을 냈으나 올해 6월 패소 판결이 났다. 삼성전자에서 집단으로 제기된 첫 근로자 지위 소송이었다.

○ 소송 폭발 이후의 시대

기업들은 ‘소송 폭발’의 시대를 막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비자, 기업, 외국기업, 정부 등 다양한 경제주체와 갈등을 겪고 분쟁도 복잡해졌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델라웨어 주처럼 기업 관련 분쟁은 기업법에 전문적 식견을 갖춘 판사가 배심원 없이 신속한 판결을 내리는 ‘기업전문법원’이 등장할 수도 있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성장이 정체된 기업이 소송 폭발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적극적으로 소송 등에 나서 활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한승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법 시스템의 중요한 소비자로 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기업소송의 증가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기업에 이익이 되거나 사법 시스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나리 기자
#법정다툼#기업#생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