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사비로 ‘한국 유학생’ 돕는 日장학재단 기쿠가와 이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1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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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가와 나가노리 이사장은 “20년간 한국 유학생을 도울 수 있었던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기쿠가와 나가노리 이사장은 “20년간 한국 유학생을 도울 수 있었던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20년간 한국학생을 도운 일본장학재단 이야기
기쿠가와 나가노리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 이사장

개인이 사비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이 장학재단은 매년 일본 대학과 대학원, 전문학교 등으로 유학 가는 한국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장학금을 출연한 이가 일본인이고, 장학재단도 일본에 있다면? 한일 간의 경제격차가 컸던 60, 70년대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장학재단을 만든 게 20년 전이라면 평가를 하는데 조금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재단의 이름은 교리쯔(共立)국제교류장학재단. 재단 설립부터 깊숙이 관여해온 기쿠가와 나가노리(菊川長德·61) 재단 이사장을 18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고쿠시칸(國士館)대학 21세기 아시아학부 교수이기도 하다.

기쿠가와 이사장이 소개한 재단 설립 계기부터가 특이하다.

“나는 30년 전부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대학 간의 친선 축구경기를 주선해 왔다. 그런데 어느 한국인 부모가 ‘아이를 일본에 유학 보냈는데 방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은 방을 얻는 절차에 차이가 크고, 외국인에게 방 내주기를 꺼리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작용한 탓으로 생각됐다. 그때 일본에 유학 오는 한국 학생을 돕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이자 부동산회사 교리쯔메인터넌스의 오너인 이시쓰카 하루히사(石塚晴久·68) 씨가 주식을 공개해 100억 엔을 벌었는데 이를 좋은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가 이시쓰카 씨에게 권유해 만든 게 바로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이다. 꼭 20년 전인 1995년 11월의 일이다. 기쿠가와 교수는 처음부터 재단 이사로 참여했고, 2010년부터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나, 한국이 발전하면서 지금은 중국 상하이, 베트남 호찌민, 캄보디아 프놈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7개국에도 위탁사무소를 두고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위탁사무소가 아니라 서울사무소(소장 하기야 준·萩谷潤)를 두고 직영할 만큼 아직도 한국을 중시하고 있다. 재단설립 다음해인 1996년부터 올해까지 17개국 66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이 중 200명이 한국 학생이다.

장학금은 크게 재단과 본사(교리쯔메인터넌스)가 주는 두 종류. 재단 장학생에게는 매월 10만 엔씩 2년간 장학금을 주고, 본사 장학생에게는 매월 6만 엔씩 1년간 지급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야할 유학생에게는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재단은 장학금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다. 유학생들이 대학을 선정하고, 머물 방을 찾고, 일본어를 배우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유학생이 일본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셈.

“전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장학금을 받은 상당수 한국 유학생들이 교수나 회사원, 통번역 업무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이 그런 직업을 갖는데 장학금이 일조를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업에 보람을 느낀다. 장학생들과 연락도 자주 한다.”

그는 한국 학생들을 많이 접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이해하게 됐다는 뜻으로 들린다.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일본체험 콘테스트’ 시상식을 마치고. 뒷줄이 수상자로 왼쪽부터 박종범(광운대) 전예인(연세대) 김문수(상명대) 송서연(한남대) 백승희 씨(동국대).앞
줄 왼쪽부터 이강민 한양대 교수(심사위원), 기쿠가와 이사장,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심사위원장), 구마노 
노부히코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장, 우에노 고이치 ANA 서울지점 매니저. 사진 제공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일본체험 콘테스트’ 시상식을 마치고. 뒷줄이 수상자로 왼쪽부터 박종범(광운대) 전예인(연세대) 김문수(상명대) 송서연(한남대) 백승희 씨(동국대).
앞 줄 왼쪽부터 이강민 한양대 교수(심사위원), 기쿠가와 이사장,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심사위원장), 구마노 노부히코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장, 우에노 고이치 ANA 서울지점 매니저. 사진 제공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

재단은 1998년부터는 한국에서 ‘일본 체험 콘테스트’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처음 10년간은 대학생과 대학원생 지원자를 대상으로 일본에 관한 상식 문제를 내고 입상한 20명에게 일본 단체 여행을 시켜줬다. 11회부터는 방법을 바꿨다. 재단이 일본의 4, 5개현을 여행 지역으로 제시하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계획서로 써내도록 한 뒤 면접을 통해 5명 정도를 선발한다. 입상자에게는 300만 원씩을 줘 자유여행을 하도록 하고 있다. 18회째인 올해의 여행지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가사키, 사가, 후쿠오카, 야마구치, 시마네 등 5개현. 지원자 44명 중 계획서를 통과한 16명을 면접해 5명을 선발했다. 이들에 대한 면접과 시상식은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재단이 20년간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재원이 튼튼하기 때문. 재원은 출범할 때보다 배로 늘어 지금은 100억 엔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익재단법인으로 출범했는데 공익재단은 수익사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일반재단법인으로 법률적 지위를 바꿨다. 그 후 투자도 잘하고, 기숙사 건물도 2동(180개실)을 구입해 수익을 올렸다. 기부금도 꽤 들어왔다.”

기쿠가와 이사장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생이 일본에서 더 많이 취업할 수 있도록 일할 만한 일본 회사를 찾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또 일본과 한국 직장은 많이 다르다. 유학생들이 회사에 들어가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우선 1999년에 재단이 창간한 유학생을 위한 취직정보지, ‘교리쯔 사쿠라(올해 3월 15호 발행)’를 좀더 자주, 충실히 만들어 배포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요즘 한일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그도 “정치인들이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재단은 20년간 한결같이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흔히들 양국 관계가 좋아지려면 민간교류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이야말로 모범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리쯔국제교류장학재단 서울사무소 02-757-2343, 2344 www.kyoritsu.or.kr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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