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스낵 레드오션 뚫은 우리 감자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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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스테디셀러 농심 ‘수미칩’의 차별화 전략

“감자는 생물(生物)이다.” 농심 직원들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말이다. 감자칩을 만드는 다른 업체들은 계절에 따라 국내산 감자와 수입 감자를 번갈아 가며 쓰지만, 수미칩은 1년 내내 국산 감자만을 저장해 쓰기 때문에 직원들은 특히 조심스럽다. 감자가 타박상이라도 입으면 길게는 6, 7개월까지 저장되는 동안에 품질이 떨어진다. 온도와 습도, 통풍이 조절되는 전용 저장고에 감자를 넣고 나면 건드리지도 않는다.

과자를 사 먹을 때 재료의 원산지까지 확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농심은 ‘좋은 국산 감자’가 제품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소비자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시장조사기관 AC닐슨에 따르면 수미칩의 시장 점유율은 출시 첫해인 2010년 약 4%에서 2015년 6월 현재 약 22.5%까지 올라섰다.

더는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감자칩 시장에서 농심 수미칩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85호(9월 2호)에 실린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100% 국산 감자 프로젝트

감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00종이 있을 정도로 품종이 다양하다. 대부분의 스낵 업체는 당분이 적고 전분이 많은 대서(Atlantic) 품종을 이용해 왔다. 감자칩과 감자튀김에 쓰기 좋도록 개발된 종이다. 하지만 감자는 겨울부터 봄까지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장기간 저장도 어려워 수입해서 쓰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농심은 소비자들에게 감자 본연의 맛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수미칩을 위해 대서 품종이 아닌 ‘수미(Superior)’ 품종을 택했다. 수미 품종은 오랫동안 국내에서 재배된 감자로 전체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우리 밥상에서 조림 반찬이나 찌개 등으로 조리된,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감자가 이 수미 품종이다. 하지만 이 품종은 튀겼을 때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쉽다. 색이 변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므로 스낵 업체들이 외면해 왔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농심은 ‘저온 진공 프라이어’를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감자칩은 섭씨 180도에서 튀기지만 진공에 가까운 저기압 상태에서는 120도 정도에서 튀길 수 있다. 낮은 온도에서 튀기니 감자 안의 당분이 잘 타지 않아 변색 문제가 해결됐고 감자 고유의 풍미와 영양분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렇게 진공 프라이어 생산 설비와 4계절 감자 저장고 설비, 제품 연구개발 등에 지난 5년간 약 600억 원을 투자했다.

① 농심의 충남 아산 스낵공장에 있는 수미 감자 저장고. 여름과 가을에 구매한 감자를 저장해 이듬해 봄까지 수미칩을 만드는 데 쓴다.
② 농심의 충남 아산 스낵공장 수미칩 생산라인. ‘진공 프라이어’를 도입해 변색 문제를 풀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① 농심의 충남 아산 스낵공장에 있는 수미 감자 저장고. 여름과 가을에 구매한 감자를 저장해 이듬해 봄까지 수미칩을 만드는 데 쓴다. ② 농심의 충남 아산 스낵공장 수미칩 생산라인. ‘진공 프라이어’를 도입해 변색 문제를 풀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 호불호가 갈리는 맛

수미칩은 두껍다. 일반 감자칩은 1.3∼1.4mm 두께에 38∼40%의 지방 함량을 갖고 있다. 수미칩은 감자 본연의 맛과 씹는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두께를 2mm로 만들었고 지방 함량은 26%로 낮췄다. 물론 기존 감자칩의 얇고 바삭거리는 느낌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많지만 수미칩 개발팀과 마케팅팀은 감자 자체의 맛을 즐기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꺼운 칩은 입안에서 부러질 때 나는 소리가 다르다. 또 소비자가 집어 드는 방식도 달라진다. 기존의 얇은 감자칩을 먹을 때 대체로 소비자들은 한 손에 여러 개를 집어 입안에 털어 넣는 데 반해, 수미칩은 두꺼워서 하나씩 집어서 씹게 된다. ‘먹는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칩들과는 다른 가치를 전달한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차별화된 제품이다. 그래서 수미칩은 주 구매 고객인 젊은 여성층뿐만 아니라 상반된 고객층이라 할 수 있는 노년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농심연구소는 수미칩 출시 후에도 신제품들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새로운 시장 트렌드를 확인한 후 제품 개발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을 여러 개 개발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특정 트렌드가 도래하면 여기에 맞는 제품을 발 빠르게 출시하는 전략이다. 당연히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이다.

2014년 말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 스낵 시장을 강타하고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때 다른 스낵 업체들은 새로운 레시피, 새로운 제품을 바닥부터 기획해야 했다. 하지만 농심은 이미 진행해 왔던 연구 결과물인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를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었다. 허니버터칩 열풍의 주역이던 해태보다도 오히려 더 빨리 생산 물량을 늘렸다. 그 결과 ‘허니버터칩’과 유사 제품들을 제치고 수미칩 허니머스타드가 2015년 1분기 스낵류 매출 전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농가의 도움으로 위기 탈출

수미칩이 소비자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 감자의 맛’이다. 이를 위해서 농심은 국내 감자 농가들과 재배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통해 감자 농가들은 수확철 가격이 폭락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영농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농심은 안정적으로 균질한 품질의 원료를 조달할 수 있다. 이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농심 담당자들은 650여 계약 농가를 최소 연 4회 방문한다. 재배 기술 향상, 수확량 증대, 농가 소득 증대라는 3가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기 위한 영농 교육 지원을 하고 있다.

계약 농가와의 신뢰 관계는 2015년 초 ‘허니버터칩’ 열풍으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판매가 크게 늘었을 때 도움이 됐다. 치솟는 수요에 맞춰 생산 물량도 늘리다 보니 5월까지 쓰려고 전 해 가을에 쟁여 놓은 수미 감자가 1월에 소진될 상황에 처했다. 한겨울에 많은 양의 감자를 추가로 구해 와야 했다. 농가 중에는 일반 판매용으로 수미 감자를 겨우내 자체 보관해 놓는 곳들이 있었다. 다만 농심에서 대량 구매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가격이 크게 오를 조짐이 보였다. 전화로 구두 계약을 하고 방문했더니 며칠 새 가격을 두 배 넘게 올려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때 오랜 기간 상호 신뢰를 쌓아 온 농가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농심 구매팀 박효상 대리는 “시세에 관계없이 농심이 잘돼야 자신도 잘된다는 마인드로 직접 추가 납품을 해 주거나 지인들을 수소문해 준 계약 농가가 많았다. 연간 소비량의 30%인 약 6000t을 이런 분들의 도움으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수미칩은 우리 감자 본연의 맛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으로 감자칩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갈렸지만, 어차피 모든 소비자를 다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포화된 일상 소비재 시장에서의 혁신, 차별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한 경영자들에게 수미칩 사례는 좋은 교훈을 준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부교수 moonj@snu.ac.kr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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