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2015~2016시즌 개막 특집] 0.8~0.9초에 공격…최태웅 감독의 ‘업템포 1.0 배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21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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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일본 전지훈련 도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 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현대캐피탈은 39세의 젊은 사령탑 최 감독이 몰고 올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2. 현대캐피탈 외국인선수 오레올 카메호(왼쪽)와 문성민이 8월 남해 전지훈련 도중 송정솔바람해변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3.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일본 전지훈련 도중 파이팅을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1.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일본 전지훈련 도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 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현대캐피탈은 39세의 젊은 사령탑 최 감독이 몰고 올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2. 현대캐피탈 외국인선수 오레올 카메호(왼쪽)와 문성민이 8월 남해 전지훈련 도중 송정솔바람해변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3.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일본 전지훈련 도중 파이팅을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4. ‘현대캐피탈’ 39세 감독이 불러온 변화

가족 초청·꽃배달…선수들 마음부터 녹여
그동안 긴장했던 선수들 웃음꽃 훈련 풍경

프런트 지원 역할 선 긋고 현장 중심 운영
훈련도 IT기기 사용 정확한 데이터로 지시

“1초 내에 공격 마치는 것이 올 시즌 목표”
‘0.7초내 공격’ 박주형·임동규 중요 자원

9월 18일 천안 현대캐피탈의 훈련장(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감독의 초청으로 선수 가족과 여자친구가 훈련장을 찾았다. 선수들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훈련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가장이 코트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 구단 직원은 “비로소 숙소에 사람이 사는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18일 개관한 이 훈련장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속에 모든 이들이 감탄하는 시설을 갖췄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화려한 인프라에 치였다고 할까.

반드시 이겨야만 했고, 지면 불행해졌던 선수들에게 배구는 부담이었다. 그런 현대캐피탈의 팀 문화를 바꾼 이는 39세의 젊은 사령탑 최태웅이다. 멋진 시설 속에서 감동의 플레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전설을 만들어야 할 주인공들을 먼저 생각했다. 이제 이 훈련장에선 행복한 선수들이 즐겁게 배구를 한다. 현대캐피탈이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빠른 스피드의 배구가 아니라 훈련을 즐기는 선수들의 마음이다. 역시 배구는 사람이 한다.

● 젊은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먼저 도닥였다!


최태웅 감독은 선수에서 사령탑으로 바로 승격해 타팀 감독들보다는 눈높이가 선수와 가깝다. 새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일본 전지훈련을 앞두고는 유부남 선수들의 집으로 과일바구니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그 속에 ‘며칠간 가장이 집을 떠나 힘들 테지만, 잘 이해해주고 격려해달라’는 진심을 담았다. 일본 전훈 도중 결혼기념일을 맞은 오레올 카메호의 아내에게는 화환도 보냈다. 최 감독은 때론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가끔은 밤에 문성민 등 선수들과 술도 마시면서 속내도 들었다.

물론 감독이 선수들에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훈련 초반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어이없는 플레이로 패한 뒤 화를 냈다. 모든 선수들에게 2시간 동안 달리기를 시켰다. 몇몇 선수는 쓰러졌다. 마침 처음 훈련장에 왔던 오레올은 그 모습을 보고 긴장했다. 최 감독은 그날 달리기를 마치지 못한 선수는 다음날 새벽에 또 시켜서 기어이 마치게 했다.

‘훈련은 힘들지만 가급적 재미있게, 또 훈련 외의 시간은 최대한 편하게!’ 이것이 새 감독이 추구하는 숙소와 훈련의 원칙이다. 그 덕에 어둡던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현대캐피탈 신현석 단장은 “쉬는 날 군 막사에서 선임병 밑에서 긴장하면서 쉬는 것과 밖에서 놀다오는 것은 다르다. 지난해 우리 선수들이 전자였다면 지금은 후자”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현대캐피탈 선수단에는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지나쳤다. 그러다보니 패배가 불러올 부정적 영향을 먼저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모두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입을 닫고 살던 선수들이 말문을 열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얼굴에는 긴장이 사라지고 웃음이 있다. 예전과 달리 무척이나 차분하게 10월 10일 개막하는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우 사무국장은 “이례적”이라고 귀띔했다.


● 달라진 프런트의 역할, 팀은 현장&선수단 중심으로!

달라진 팀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은 최태웅 감독 부임 이후 사라진 단장실에 있다. 최 감독은 스태프 회의를 위한 장소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구단은 공간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기존 단장실을 없애고 스태프 회의실을 만들었다.

단장은 사무국 직원들과 같은 방을 쓴다. 직함도 선수단 지원단장으로 달라졌다. 프런트의 역할은 철저히 선수단을 지원하는 것으로 한정됐다.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최 감독은 훈련 때 직원들의 코트 출입까지 금지시켰다. 훈련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급한 일이 생겼을 때도 출입문 밖에서 얘기할 뿐 코트로 들어갈 순 없다.

최 감독은 선수들과 연봉협상도 직접 했다. 그는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들은 감독과 운명공동체라는 현실을 알았고, 감독은 동기를 부여해줬다. 11시즌 만에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에 머물렀지만, 선수들의 연봉을 대부분 올려줬다.

● 전략·실행·스피드·변화·다양성의 집합-기업의 목표와 맞춘 훈련방식의 변화

현대캐피탈의 기업 이미지는 세련됨과 새로움으로 압축된다. 그동안 배구단은 회사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최태웅 감독은 달랐다. 젊은 감독은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감독실에는 컴퓨터가 3대나 있다. 선수들의 동영상을 분석하고, 훈련 때도 동영상을 직접 보여준다. 훈련과 체력 및 부상이력 관리에 필요한 어플리케이션도 만들고 있다. 선수들에게 태블릿PC를 나눠준 뒤 각자 공부하도록 할 계획이다. 훈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도구와 방식을 찾아냈다. 감으로만 훈련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수치와 그래픽 및 동영상 등으로 보여준다.

최 감독은 “일을 시킬 때 최고의 방법은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트 바닥에는 암호 같은 다양한 그래픽이 있다. 최 감독이 추구하는 ‘업템포 배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코트를 9개의 공간으로 나눠 선수들의 책임수비범위와 협력수비공간을 설정했다. 빠른 토스가 나가는 공간에도 공격수에게 전달되는 시간 0.7∼0.8초를 기준으로 2개의 원을 그렸다. 그 안에선 빠른 공격을 하자는 약속을 모두에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효율적 수비를 위해 리시브나 디그 때 롤링수비(구르는 동작)도 금지시켰다. 세터에게는 토스의 높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선을 연결해 확인시켰다. 최 감독과 스태프는 스톱워치를 이용해 토스 시간과 공격수의 스텝 동작을 일일이 재고 있다. 더욱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최 감독이 구상해낸 아이디어다. 이를 실행하면서 현대캐피탈의 배구는 달라지고 있다.


● 시즌 전략과 팀 전술 변화

새 시즌 현대캐피탈의 배구는 0.8초에서 0.9초 사이에 성패가 결정된다. 최태웅 감독이 추구하는 스피드 배구는 상대팀보다 한 박자 반이 빠른 업템포 배구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이 배구를 설명해줬다. 그는 “현재 세계배구의 흐름이자, 아시아 최강 이란의 성공 모델을 본받아 빠른 배구를 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0.6초 내에 공격 완성을 목표로 삼았다. 시행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맛봤다. 무턱대고 세터의 토스만 빠르다고 업템포 배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격수와의 호흡, 빠른 이동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초반 8번의 연습경기에서 7번이나 패했다. 대학팀에도 졌다. 새로운 박자를 선수들이 따라가지 못했고, 부담스러워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시간을 찾아냈다. 0.8∼0.9초에 팀 공격이 극대화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최 감독은 “1초 내에 공격을 마치는 것이 시즌 목표”라고 설명했다.

훈련 때보다는 실전에서 공격 템포가 늦어지는 문제점이 나오고 있지만, 실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빠른 스피드에 차츰 적응한 선수들은 일본 전훈에서 성과를 확인했다. 일본에서도 가장 플레이가 빠르다는 도레이와의 연습경기에서 고전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세터 노재욱은 “상대팀이 워낙 빠르게 움직여 초반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겼다. 일본은 그 배구를 완성하는 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현대캐피탈은 그 힘든 길을 택했다.

업템포 배구를 위해선 리시브도 중요하다. 과거와 달리 세터에게 안전하게 밀어주는 리시브보다는 어택라인 부근에 높게 올려주는 리시브가 관건이다. 그 시간을 이용해 세터와 4명의 공격수들이 약속된 공격을 위해 정해진 위치로 이동해 빠른 공격을 하는 것이 업템포 배구의 골격이다.

공격 타이밍이 빨라지면서 선수들의 숨겨졌던 능력도 되살아났다. 박주형, 임동규는 업템포 배구가 찾아낸 보물이다. 그동안 리시브가 약하고 공격 파워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연타와 빠른 공격을 원하는 최 감독에게 두 선수는 중요한 자원이다. 0.7초 내에 공격이 가능하다. 문성민이 0.8∼0.9초, 오레올이 1초대에 공격을 한다. 강한 공격도 좋지만, 연타의 효율성을 높게 평가한다.

● 키플레이어

최태웅 감독의 믿음에 박주형은 동료들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임동규는 일본 전훈 때 교체하려 하자 “더 뛰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할 정도까지 올라섰다. 최 감독은 세터 노재욱을 팀의 키플레이어로 지목했다. 한 단계 성장한 진성태가 시즌 초반 출전이 불투명한 플레잉코치 윤봉우를 대신한다. 오레올은 범실이 없는 공격을 한다. 현대캐피탈과 연습경기를 치렀던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이 “화려하진 않지만, 경기를 끝내고 보면 성공률 55%에 필요한 점수를 뽑는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문성민, 최민호, 여오현은 지난 시즌 이상을 기대한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성적보다는 우리 배구 미래에 중점”

●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출사표


선수들에게 우리가 시도하는 배구가 잘 되면 한국배구의 변화가 시작될 테니, 자부심을 갖고 힘들더라도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해보자고 했다. 처음 감독이 된 뒤 무게도 잡고 했는데, 그런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 선수들의 마음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거북해서라도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그 대신 운동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내가 무너지면 선수들이 다 무너진다는 책임감을 갖고, 제대로 기준을 잡고 정도를 걸을 생각이다. 그래야 선수들이 올바로 클 수 있고 운동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성적에 부담감은 있지만, “현대캐피탈의 이미지에 맞는 배구를 하지 않으면 우승을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냐”는 구단주의 뜻을 잘 반영하겠다. 스마트하면서도 밝고 진취적인 회사의 이미지에 맞는 팀이 되겠다. 성적보다는 우리 배구와 미래를 보겠다. 지금은 새로운 길을 닦아나가는 상황이다. 모든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매 라운드가 고비가 될 것이다.

천안 l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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