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청담동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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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당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 동아일보DB
2001년 당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 동아일보DB
더위가 지겹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아침저녁이 선선해지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여름은 문득 멀어졌고,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투명한 가을은 한없이 쓸쓸하다. 담쟁이도 잎사귀 끝이 마르고 드문드문 연한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청담동 골목길에서 산 지도 벌써 19년째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대로에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이 골목길은 빌라 세 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단독 주택인 고즈넉한 동네였다. “물 좋은 고등어 왔어요”라고 외치는 생선 트럭이 지나가고 나면 “고장 난 세탁기, 컴퓨터 삽니다”라는 가전 고물상 트럭이 지나가고, 저녁때가 되면 두부장수의 딸랑딸랑 종소리가 골목길을 지나갔다. 압구정동에서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너무나 다른 분위기여서 놀랐다. 세 번째 빌라였던 빨간 벽돌의 우리 빌라가 담쟁이로 완전히 뒤덮이고, 덩굴손이 창문의 프레임을 조금씩 침범하여 완전히 아라베스크 무늬의 사각형을 이루게 되기까지, 골목길의 주택들은 하나씩 사라져 그 자리에 미용실, 웨딩 사진관, 그리고 새로운 빌라 두 동이 더 들어섰다.

헐려 나간 집 중에는 동글동글한 하얀 돌로 폭은 넓게 높이는 나지막하게 담장을 쌓은 집도 있었다. 그 낮은 담장 위에 베고니아가 가득 심겨진 큰 오지 화분 세 개가 올려져, 늦은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수줍은 듯 화려한 붉은 꽃 색깔이 골목길 전체를 환하게 비추었다. 골목길을 지나다니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그 집 주인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저 단순히 충실하게 자기 삶을 살 뿐인데 그것만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케이크라도 사 들고 가 집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 집은 팔리고 헐려 나가 새로운 빌라로 변했다.

정감 어린 집들만 없어진 게 아니다. 급기야는 골목의 이름까지 사라졌다. 작년 1월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에서 청담동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골목은 ‘압구정로’가 되었다. 게다가 동쪽으로 내려가는 세로 길은 ‘도산대로길’이 되었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압구정로와 도산대로 사이에는 거대한 블록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한두 걸음만 내디디면 압구정로가 도산대로로 바뀐다. 우리의 의식 속에 오랫동안 축적돼 온 이미지를 단숨에 지워 버리고 없애 버릴 그 무슨 급박한 필연성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어릴 적에는 종로구의 사직공원 옆 필운동에서 살았다. 사직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내수동, 내자동, 옥인동 들은 내게는 단순한 청각 이미지의 단어들이 아니라 유년의 꿈속 같은 미로의 공간이다. 지금은 그 이름들도 ‘자하문로’와 ‘필운대로’로 간단히 통합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길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흥분했던 적이 있다. 동네 이름은 그 자체가 문화재다. 남의 나라는 200년간의 세월을 견디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19년도 견디지 못한다. 600년 역사의 고도라고 자랑하면서 우리는 왜 서울의 역사를 그렇게도 지워 버리려 애쓰는가? 찾아보니, 도로명 주소위원회는 2007년에 발족되었고, 2014년 1월 새 주소 체계를 시행하기까지 예산은 400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들인 돈은 아깝지만 차라리 백지화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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