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人間의 틈에서 핀 꽃, 그건 바로 사랑이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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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그리울 때 보라/김탁환 지음/228쪽·1만2000원·난다

‘임경업전’의 필사본 중 하나에는 이런 후기가 있다.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선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소설 필사를 잇는다. 종남매와 숙질까지 필사를 돕는다. 이렇게 해서 글씨체가 여럿 섞인 필사본 임경업전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이때 소설은 상품이 아니라 사랑이다. 김탁환 씨가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이고, 새 산문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이렇게 사람에 대한 작가의 깊은 정이 담겨 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다룬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 틈에 풀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시간 공간 인간의 그 ‘사이 간(間)’을 주목하라’)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대목인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외롭다고 말하지 못한다”를 옮겨 전하면서 작가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들은 내면의 소리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고 한다.

폭넓은 관심을 가진 작가답게 책에는 역사와 과학과 우주에 대한 관심이 두루 담겨 있다. 산문 한 편 한 편마다 관련되는 책들을 함께 소개한 것도 눈길을 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을 향해 들려주는 얘기는 이렇다.

“우선 책상을 떠나 자신이 가장 아끼는 대상에게 가십시오. 한 번만 가지 말고 시도 때도 없이 가서 그 대상을 바라보십시오.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정성을 쏟으십시오.”

작가는 이어 “그러고 나서 무엇인가를 써보았다면, 나는 당신이 작가수업을 충분히 받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 그 글의 수준과 무관하게 당신은 이미 작가입니다”라고 했다.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테크닉을 습득하기 전에, 대상에 대한 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작가의 태도다. 이때 진심이란 것이 다른 말로 ‘사랑’을 가리키는 것임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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