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작은 스님’이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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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종교 서적 중 관심이 가는 책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근대 불교사 연구에 열정을 기울여 온 동국대 김광식 교수의 ‘우리 시대의 큰스님’입니다. 특히 ‘큰스님’이라는 세 글자에 눈길이 가더군요. 한국 불교는 물론이고 우리 정신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준 속에 고승 31명의 삶이 조명됐습니다.

경허, 만공, 혜월, 한암, 탄허, 용성, 동산, 경봉, 효봉 스님….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주로 활동한 분이 많습니다. 30년 안팎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람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분들로는 청담 성철 서암 광덕 스님이 꼽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법명만 들어도 배움을 청하고 싶은 스님들이 드물어질까요? 이따금 절집에 가면 도처에서 큰스님 소리를 듣는데 말이죠. 현재의 인물이기에 그 평가가 불가피하게 냉정해진다는 이치를 감안해도 정말로 고개가 숙여지는 스님은 드문 게 요즘 현실입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불교계 뉴스를 보면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주지 자리부터 종단의 주요 소임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큰스님들은 큰스님들끼리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고, 파당을 이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정치판과 다를 게 없죠.

‘포난사음욕 기한발도심(飽煖思淫慾 飢寒發道心)’이란 구절이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탕한 욕구가 떠오르고, 주리고 추우면 도심이 일어난다는 거죠.

큰스님들이 몰려 있는 서울과 달리 충북 청원에는 ‘작은 스님’도 있습니다. 가끔 전화를 걸어 스님에게 글을 부탁하면 “농사일 때문에 바쁜데. 나보다 잘 쓰는 스님 많은데…”라며 예의 고집을 피웁니다. 그러면 ‘이럴 수 있느냐’며 과거 인연을 들먹이고, 다시 ‘이번만’이라는 읍소로 원고 약속을 받아내곤 했습니다.

어쨌든 뻔한 제 ‘수’가 통하는 걸 보면 먼 사이는 아닌 듯하죠. 지난해에는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는 제목의 스님 책을 손에 쥐고 스님답다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며칠 뒤 스님이 있는 마야사로 내려가 차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현진 스님입니다. 그때 작은 스님을 주제로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원래 안 크신 줄 아는데, 새삼스럽게 작은 스님 타령이신지.” “그래 원래 작아요. 그런데 세상에 큰스님이 너무 많아서.”(스님) “좀 삐딱한 느낌이시다.” “글쎄, 그럴지도. 후후. 그런데 작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스님)

작은 것으로 치면 해인사 승가대학장으로 있는 원철 스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 같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여러 소임을 맡던 스님은 몇 해 전 홀연 모든 것을 버리고 해인사로 떠났습니다. 스님이 기거하던 작은 방이 기억에 선합니다. 책 몇 권을 빼면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거처였죠. “서울 일 다 버리고 왔는데 결국 승가대학장이네요?”라고 묻자 스님은 “다 내려놔야 하는데…. 그렇다고 공밥 먹을 순 없죠. 밥값이죠”라고 하더군요.

손수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와 작은 스님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작은 스님들이 보고 싶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스님#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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