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안보법안 6분만에 날치기… 빗속 시위 시민들 ‘울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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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특위서 위원장 감싼 뒤 11개 법안 표결없이 기립 가결
허찔린 野, 몸싸움도 허사로… 18일 본회의 처리놓고 충돌 예고

일본 여당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안보법안을 참의원에서 6분 만에 통과시켰다.

17일 오후 4시 28분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국회의사당. 참의원 평화안전법제 특별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선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위원장이 자리에 앉자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의원 등 건장한 자민당 남성 의원 10여 명이 의원석에서 뛰어나갔다. 이들이 스크럼을 짠 채 위원장을 감싸자 민주당 의원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고노이케 위원장은 자민당 의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법안을 하나씩 올렸고, 사토 의원의 손짓에 따라 자민당과 공명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찬성 의사를 표시하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집단자위권 법제화 등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정·개정안이 6분 만에 처리됐다. 여야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민주당 의원들은 육탄전으로 나가다 판세가 기울자 TV 카메라를 향해 ‘자민당이 죽은 날’이라는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는 안보법안은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게 됐다. 국회 앞에서 밤샘시위가 벌어지고 민주당이 의사 진행을 지연시켰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르면 18일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자민당은 오전 9시부터 특위를 개회하려 했지만 민주당 등의 반대로 오후 1시가 돼서야 회의를 열었다. 전날 3만5000여 명이 비를 맞으며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전날 민주당은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며 저항했고 아베 총리는 오전 4시 반까지 국회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성과 없이 떠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달랐다. 민주당은 고노이케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동의안을 내면서 3시간 반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활용해 회의를 지연시켰지만 불신임안 부결 직후 자민당에 허를 찔렸다. 이날 날치기 소식이 전해진 뒤 국회 앞에서는 3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아베 정권 퇴진’ 등을 주장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럼에도 자민당은 오후 8시 10분부터 본회의를 열었다. 이에 민주당 등은 나카가와 마사하루(中川雅治) 운영위원장 해임결의안 등을 참의원에 제출하는 등 지연전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은 18일에는 강행 처리를 할 태세다. 일본은 19∼23일이 연휴다. 이 때문에 지역구로 돌아가는 의원이 많은 데다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도 있어 자민당은 법안 처리 강행 시점을 19일 이전으로 잡아 놓았다.

안보법안이 시행되면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서나 미군 등 외국 군대를 후방 지원할 수 있고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등 특정 조건에서는 무력행사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전수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를 근간으로 해온 일본의 전후 안보 체제가 ‘먼저 공격을 받지 않아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무력행사와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 위반이라는 헌법학자 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아베 내각은 헌법 해석을 바꾸는 편법으로 이를 비켜 나가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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