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對 10 전투… 피오리나만 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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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공화 대선주자 2차 TV토론회

‘트럼프는 주춤했고, 피오리나는 급상승했다.’

16일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2차 토론회 성적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날 오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지지율을 기준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포함된 메이저 주자 11명과 린지 그레이엄 등 군소 주자 4명으로 각각 나뉘어 진행됐다.

3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의 중심은 지지율 1위로 앞서 나가는 트럼프였다. 나머지 주자 10명이 트럼프를 집중 공격해 트럼프는 ‘1 대 10’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예봉을 요리조리 피하려고 애썼지만 외교 등 주요 정책에서 빈약한 지식과 식견을 드러내 ‘트럼프 돌풍’의 한계를 스스로 보여줬다. 반면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는 트럼프를 상대로 ‘싸움닭’ 기질을 발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토론회의 첫 공식 질문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핵무기 발사권을 가질 자격이 있느냐’였다. 최근 트럼프로부터 “저 얼굴을 봐라. 누가 투표를 하고 싶겠느냐”는 인신공격을 당한 피오리나는 “트럼프는 훌륭한 엔터테이너”라고 평가 절하한 뒤 “유권자들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는 기업인으로서 성공했고 이를 국가 운영에도 적용할 것”이라며 “내 성격은 (핵무기 발사 여부를 판단할 만큼) 매우 차분하고 괜찮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6일 폭스뉴스가 주최한 1차 공화당 토론회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날 토론회가 트럼프의 ‘얼굴 비하 발언’ 등 정쟁 이슈 외에도 이민개혁, 동성결혼, 러시아 및 중동 문제 등 트럼프가 다소 취약한 정책 이슈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 트럼프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다”며 일반론을 폈고, 자신이 불을 지핀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는 기존 주장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은을 겨냥해 “북한의 미치광이가 거의 2주마다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역시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반면 피오리나는 날 선 메시지와 순발력으로 토론회를 장악했다. 트럼프의 ‘얼굴 비하 발언’에 대해선 “트럼프가 한 말을 미국 모든 여성은 분명히 들었을 것”이라며 트럼프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이에 “피오리나의 얼굴은 아름답다”며 사실상 사과했다. 또 피오리나는 자신을 포함해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워싱턴 아웃사이더’들이 대선 레이스에서 선전하는 데 대해 “워싱턴 내부에서 고장 난 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니까 외부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트럼프 돌풍에 치이고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번 토론회에서도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했다. 부시는 트럼프가 “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했다. 당신 형(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잘못해서 버락 오바마 정권이 탄생했다”고 공격하자 “형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맞받아친 게 거의 유일하게 박수를 받은 장면이었다. 트럼프에 이어 지지율 2위를 유지해 온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도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CNN은 토론회 후 “최대 승자는 피오리나, 패자는 트럼프”라며 “트럼프가 특유의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도 사실상 ‘트럼프 토론회’로 진행된 만큼 트럼프의 독주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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