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반짝이옷 다시 입은 ‘이끼’ 박경수의 눈물꽃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18일 05시 45분


“타석은 작전하는 곳이 아니라 치러가는 곳이다!” 조범현 감독의 한마디는 kt 박경수가 2003년 프로 데뷔 후 13년 만에 꽃을
 피울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LG 시절 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팬 페스티벌(오른쪽 사진)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망가짐도 
마다하지 않았던 ‘만년 유망주’는 이제 응원단석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타석은 작전하는 곳이 아니라 치러가는 곳이다!” 조범현 감독의 한마디는 kt 박경수가 2003년 프로 데뷔 후 13년 만에 꽃을 피울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LG 시절 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팬 페스티벌(오른쪽 사진)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망가짐도 마다하지 않았던 ‘만년 유망주’는 이제 응원단석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라운드보다 회식 분위기 달구던 LG 광대
-팬축제 땐 ‘반짝이옷’ 입고 1등도 했지만…
-이끼처럼 존재감 잃어갈 무렵 운명적 kt행
-“타석은 작전하는 곳이 아닌 치러가는 곳”
-조범현감독 격려에 마법처럼 토해낸 21홈런
-“이젠 이끼가 되긴 싫어요…열심히 해야죠”

“박경수! 박경수!”

LG 시절, 회식 자리에 가면 동료·선후배들은 늘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럴 때면 그는 ‘광대’가 됐다. 연승을 해서 회식을 하면 좋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연패를 해서 회식을 하면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그는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주변사람들을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가 부상으로 쉬거나 2군에라도 가서 회식 자리에 빠지면, 모두들 “경수가 없어서 재미없다”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성남고 시절 ‘야구천재’로 각광받은 박경수(31). 2003년 기대 속에 1차지명을 받고 LG에 입단한 그가 더 자주 기대에 부응한 곳은, 서글프게도, 그라운드보다는 그런 회식 자리였다. 2008년 겨울에는 그 끼를 팬들에게도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LG 팬들과 함께 하는 ‘러브 페스티벌’ 무대.

“짠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어디서 빌렸는지 ‘반짝이 옷’까지 갖춰 입고, 그라운드가 아닌 응원단상에 선 그는 트로트가수 박상철의 히트곡 ‘무조건’을 목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열창했다. 부끄러움이 많을 것 같은 순박한 외모. 그런 그가 코믹한 엉덩이춤까지 덩실덩실 추자 팬들은 허를 찔렸다는 듯 배꼽을 잡았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에게 ‘팬 만족도’ 설문조사를 받은 결과 93.9%의 지지율로 영예의 1위를
차지했다. 프로 데뷔 이후 야구로는 1등을 해보지 못했던 박경수가 어쩌면 LG 시절 가장 반짝였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웃고 떠든 기분 좋은 하루. 그러나 팬들을 위해 기꺼이 망가졌던 그는 상처를 받았다. “한두 번 놀아본 솜씨가 아니다”, “야구나 잘해라”는 팬들의 비아냥거림이 날아들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으리라. LG의 암흑기, 그라운드에서 ‘팬 만족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는 무엇을 해도 욕을 먹었다.

“야구선수가 야구로 빛나지 못하면 아무리 반짝이 옷을 입고 팬들을 즐겁게 해준들 소용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더 이상 반짝이 옷을 입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대신 그라운드에서 한번이라도 반짝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LG 시절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12년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무로 크지도 못했고, 바위로 자리 잡지도 못했다. 어느새 나무와 바위 틈새에 말라붙어 가까스로 생을 이어가는 이끼처럼, 서서히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천덕꾸러기 야구선수’로 전락했다.

지난해 답답한 마음에 ‘점을 잘 본다’고 소문난 스님을 찾아갔다. “이동수가 있겠어.” 그렇잖아도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 속으로 ‘정말 용하네’라고 생각하며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동수’는 시즌 말에 찾아왔다. FA(프리에이전트) 이적. 신생팀 kt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kt 이적은 이끼처럼 말라가던 그의 야구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홈런 20개는 쳐야 한다.” 평소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영입을 지시했던 조범현 감독이 다짜고짜 미션을 내렸다.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홈런이 8개,12년간 통산홈런이 43개에 불과했던 ‘똑딱이’ 타자. 박경수도 “처음엔 감독님이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해보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감독은 숙제만 툭 던져준 것이 아니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햇빛(관심)과 물(조언)을 줬다. 시즌 초반 부진에 빠졌을 때 그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마디를 건넸다. “타석은 치러 가는 곳이지 작전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주자만 앞에 있으면 작전을 내지도 않았는데, 박경수는 스스로 번트 자세를 취했다.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맞히는데 급급한 타격을 하기도 했다. 주연이 아닌 조연, 나무가 아닌 이끼의 삶을 살았던 LG 시절 몸에 밴 타격 습관이었다. 그래서 조 감독은 “캠프에서 쳤던 것처럼 자신 있게 쳐라”고 주문했다. 어딘가 모르게 위축돼 있던 박경수는 개막 이후 19경기 만인
4월 19일 첫 홈런포를 가동하더니 마법에 홀린 것처럼 홈런포를 마구 토해냈다. ‘난 홈런타자가 아니다’고 스스로 설정해뒀던 ‘한계의 커튼’을 걷어치우자, 숨어있던 잠재력이 마침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7일까지 생애 최고 기록인 0.299의 타율과 21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다.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도 뽑혔다. 최종 엔트리까지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바깥에서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기쁜 일이었다.

이끼는 너무 많은 빛이 들어도 말라비틀어진다. 너무 물기가 없어도 생장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컸던 세상의 기대와 주변의 조언 속에 말라가던 이끼는 13년 만에 파릇파릇 생명을 돋아내고 있다.

“LG 시절 잘하고 싶었는데 안 됐어요. 좌절하기도 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어려운 살림을 쪼개 아들을 야구시킨 부모님을 생각해서 그만두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지난 세월이 좀 한스럽기도 해요. 12년간 기회를 준 LG 구단과 LG 팬들의 기대에 왜 부응하지 못했을까…. 지금 kt로 와서 이렇게 하는 것도 어쩌면 LG 시절 고생하고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LG 시절이 고맙고 미안해요. 이끼요? 맞아요. 저는 그동안 이끼처럼 살았어요. 빛도 못 보고 말라비틀어졌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죠. 이제 1년 반짝했습니다. 아직 제 야구가 정립됐다고 보지 않아요. 방심하면 다시 이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해야죠.”

박경수는 다시 반짝이 옷을 꺼내 입었다. 이번엔 응원단상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검은 마법사의 반짝이 옷을 입고 신명나게 엉덩이춤을 추고 있다. kt 팬들은 요즘 그라운드에 박경수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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