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진, ‘명품 트레이너’에서 ‘명품 보컬리스트’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17일 21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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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전봉진. 사진제공|다이아몬드원
가수 전봉진. 사진제공|다이아몬드원
갱스터 래퍼 외모에 고운 미성. 경찰의 불심검문을 자주 받을 것 같은 민머리의 소유자이지만, 유치원 교사와 같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가수들 사이에서 보컬트레이너로 유명한 전봉진이다. 2000년대 초반, 우연찮게 휘성에게 노래를 가르치게 된 것을 계기로 거미, 태양(빅뱅), 윤미래, 종현(샤이니), 규현(슈퍼주니어), 수호(엑소) 등의 보컬트레이너가 됐다. 이제는 그는 십수 년째 이어진 우여곡절을 끝내고 10월 자신의 첫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다. 데뷔음반 준비에 한창인 그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 ‘반전’의 남자, “뒷걸음질치다 여기까지”

그는 온몸으로 ‘반전’을 설명하는 남자다. 문신, 오토바이, 술·담배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고, 말보다 행동이 앞설 것 같지만, 모두 선입견이다. 문신도 없고 오토바이도 타지 않는다.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고, 술은 스물여섯 살이 돼서야 마시게 됐다. 그나마 술도 먼저 ‘마시자’ 권하는 법 없다. 더욱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누군가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면, 흠칫 놀란다. 그러다보니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라는 유치한 말을 하게 된다. 다행히 요즘은 ‘스타일’로 봐주시는 시선이 많다. 하하.”

그가 민머리가 된 건 13~14년 전이다.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꿰매느라 머리를 밀었지만, 사람들이 “스타일 바꿨네”라는 반응이 많아 진짜 “내 스타일”이 됐다.

전봉진과 같은 유명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쟁쟁한 보컬리스트들의 스승인데 왜 아직 음반을 내지 못했을까. 그는 “뒷걸음질치다 보컬트레이너가 됐고, 뒷걸음하다 이제 음반까지 내게 됐다”고 했다.

전봉진은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20대 후반, 교회 성가대 선배의 권유로 한 아마추어 보컬팀의 리드보컬 오디션을 본 것을 계기로 파란만장한 보컬트레이너 인생이 시작됐다.

● 휘성으로 시작된 보컬트레이너

전봉진은 고교 졸업 후 대학을 가지 못했다. 뭘 할까 고민하다 입대했고, 제대 후 또 다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내가 재미있게 하던 걸 해보자’는 생각에 노래를 하기로 했다. 그때서야 처음 뮤지컬을 제대로 알게 됐고, 귀동냥으로 연기를 배웠지만 모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다 성가대원 중 뮤지컬 배우인 한 선배가 보컬팀 오디션을 추천했다. 오랜 성가대 생활로 악보는 볼 줄 알고 하모니 넣을 줄 알았기에 부담 없이 지원했다가 합격했다.

보컬팀에서 전봉진은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나 베이비복스 소속사 DR뮤직에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DR뮤직에선 A4라는 남성그룹이 있었다. 휘성은 A4 멤버였다. 휘성이 A4에서 탈퇴하고, 당시 소속사를 떠난 후 솔로가수로 데뷔해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휘성은 전봉진에게 ‘노래를 계속 가르쳐달라’ 요청했고, 휘성을 통해 거미에게도 노래를 가르쳤다. 그러는 사이 그는 보컬트레이너가 돼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활동했던 재미동포 가수 앤도 제자로 맞았다. 휘성과 앤. 당시 최고의 남녀 보컬 테크니션들을 가르치면서, 전봉진에 대한 입소문이 급속히 퍼졌고, ‘일’이 밀려왔다.

가수 전봉진. 사진제공|다이아몬드원
가수 전봉진. 사진제공|다이아몬드원

● 잇달아 무산된 가수데뷔, 보컬트레이너의 커리어는 높아져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노래 잘 한다’는 소리 좀 듣던” 전봉진은 임창정 김현성 등이 소속돼 있던 라플엔터테인먼트에서 다시 가수가 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내부 사정으로 전봉진은 음반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못돼 “2년 반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계속하게 됐다.

이미 가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있던 터라, 일은 끊임없었다. 전봉진에게 사사 받은 가수들이 동료들에게 추천하면서 아이돌 가수들의 ‘스승’이 됐다. 원타임 대니, 스위티 은주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을 가르치면서 한때 YG를 통해 앨범을 낼 기회를 잡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을 꾸준히 찾아오는 가수들을 대하면서 “가수의 꿈은 포기하더라도, 음악의 끈은 놓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전봉진은 보컬트레이너로서 엄청난 커리어를 가졌고, 영향력도 상당하지만 전봉진은 ‘제자’대신 ‘동료’라 했고, ‘가르쳤다’기보다 ‘같이 연습했다’고 했다.

“나는 제자가 아니라 음악 동료로서, 아이들과 가르쳤다. 아니, 가르쳤다기보다 같이 연습했다. 나는 노래를 가르치지 않았고, ‘목소리’라는 악기를 만들어줬다. 연주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 더원이 내민 손, 드디어 가수로

전봉진은 가수 준비하다 무산되고, 보컬트레이너를 하다 다시 가수 준비하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74년 동갑내기 더원이 손을 내밀었다. 더원 역시 동방신기 등의 보컬트레이너로 유명세를 얻었다. 더원은 전봉진에게 “박복한 호랑이띠, 나는 창이고 넌 방패다. 나는 뚫고 나갔다, 너는 단단하다. 같이 해보자”고 가수데뷔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더원이 개인사정으로 활동을 일시중단하게 됐고, 전봉진의 가수데뷔 작업도 같이 중단됐다. 잠시 낙심하기도 했지만, 더원이 다시 MBC ‘나는 가수다’에서 가왕이 되고, 중국 후난위성TV ‘나는 가수다’로 한류스타가 된, 작년 가을 다시 전봉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같이 해보자”고. 그로부터 1년 만에 전봉진은 감격적인 가수 데뷔를 눈앞에 두게 됐다.

“나는 보컬트레이너가 되려한 적 없었지만 보컬트레이너가 됐고, 가수되려 한 적도 없지만, 이제 42살이 되어서 친구(더원) 덕분에 가수가 되려는 순간에 놓이게 됐다. 내가 무슨 면허가 있어 보컬트레이너가 된 것도 아니고,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코러스 역할로 기획사에 들어갔던 것이 오늘 여기까지 왔다.”

● “이제 때가 왔다, 그동안은 훈련의 시간들이었다”

늦깎이 데뷔를 앞둔 전봉진은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다림의 시간은 “트레이닝의 기간”이라 여겼다.

“돌아보면 슬픈 일 많았다. 기회는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오기 때문에 얻는 것 아닌가. 내가 준비만 잘돼 있다면, 기회가 올 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전봉진이 준비한 첫 싱글은 과거 업타운이 불렀던 ‘마이 레이디’의 리메이크 곡이다. 전봉진은 이를 10월 중 디지털 싱글로 발표하고, 이후 자신의 오리지널 신곡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나이 들어 데뷔한다니 불안한 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생긴다. 요즘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뒷걸음질쳐서 마흔 둘, 지금까지 왔고, 이제야 나를 알리는 ‘그랜드 오픈’의 시간이 오게 됐다. ‘10년만 젊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마음만은 32살처럼 하겠다. 하하.”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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