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희숙]출산율 못 올리는 저출산대책 폐기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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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천문학적 재원인 66조원 쏟아붓고도 효과 못내
양육비용 몇푼 주는 것 아닌 엄마가 눈치도 피해도 안보는
남녀평등사회 건설이 진짜 대책
총리실이 컨트롤타워가 돼 저출산 정책 방향 재정립하라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여성의 교육수준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하락한다는 상식과 달리, 실제 출산율은 하락했다가 다시 높아지는 U자 형태를 보인다. 선진국의 출산율이 고학력 여성 중심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여성 고용과 출산율의 관계 역시 역관계를 보이다가 1990년대 이후 양(陽)의 상관관계로 돌아선 것으로 관찰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유력한 것이 양성평등 원리의 수용 여부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 기회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사회가 양성평등 원칙을 수용하지 못하기 쉽다. 따라서 자아실현을 추구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가정을 꾸리고 출산을 하려는 욕구를 희생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발전과 함께 양성평등의 원리가 힘을 받게 되면, 고용기회 증가가 출산율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나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적극적으로 양성평등 원리를 확산시킨 국가들은 출산율도 상당히 반등했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일생일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금전적인 출산 지원 같은 한두 가지 정책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출산율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오만하게 덤비는 것만큼이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도 무모하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부모가 됨으로써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각국의 경험은 여성 개인이 가진 삶의 가능성, 즉 경제활동 기회를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지가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출산율 제고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역할의 차이로 인한 불편함이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잦아들 수 있도록 선순환을 촉발할 수 있는지가 된다.

초등학교에서 아무 때나 엄마들을 불러대지 않고 토요일에도 면담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주말이나 한밤중에도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게 허용하는 것, 직장에 다녀도 좋은 보육서비스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 공교육이 정상화해 사교육 학원에 대한 정보 전면전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것, 아빠들도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게 되는 것 등 그 선순환을 돕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을 어느 한 부처의 업무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저출산 정책은 양성평등이나 노동시장에 대한 관점이 별로 높지 않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 아래 투입된 66조 원 중 80%나 되는 액수가 양성평등이나 경제활동 지원과 별 상관없는 보육 지원 등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양육비 지원에 쓰였다.

반면, 양성평등을 버젓이 부처 영문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는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는 관련 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역할보다는 아이 돌보미나 청소년 아카데미 사업, 여성 일자리센터 등 사업성 업무에 힘을 쏟고 있어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과 마찰의 여지가 상존한다.

양성평등의 원리를 사회 각 부문의 보편적 운영원리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각 부처의 정책을 점검하고 방향성을 관철하는 총괄적 역할이 필요하다. 국무총리실이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부처들을 조율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선책으로는 기능 중심으로 편제된 타 부처와 달리 여성이라는 대상을 설정해 끊임없이 기능상, 예산상의 중복을 초래하고 있는 여성가족부의 사업을 모두 타 부처로 이관시키고 정책기획과 조정을 주 업무로 하는 양성평등 정책위원회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하에 주기적으로 종합선물세트를 꾸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누가 봐도 출산율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책을 양산하는 것은 이제 중지해야 한다. 자녀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저출산 대책이다. 그렇다면, 젊은 부부에게 각종 혜택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살기 좋고 안전한 사회,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저출산 대책에 주력하는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안 오른다’는 농담 같은 진담이 무게를 갖는 것이다. 티 나는 지출보다 사회의 구성원리를 찬찬히 바꾸어나가는 티 나지 않는 노력이 절실하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저출산#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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