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님 모십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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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업무에 기피… 팀장들 “야근 최소화” 각서까지 쓰고 ‘삼고초려’

‘형사 구함.’

경찰이 조직 내 형사 기피 현상으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 업무 강도는 높고 대우는 시원찮은 탓으로 보인다. 민생 치안의 최전선에서 뛰어야 할 형사가 되기 싫어하는 풍조가 심화되면서 인사 철이 되면 팀원을 구하러 강력팀장이 발 벗고 나서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최근 경찰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을 통해 생긴 형사에 대한 관심이 현실과는 다른,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서울 A경찰서의 경우 2, 7월 인사 때마다 형사과 근무 60여 명 중 절반 가까이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다고 희망했다. 업무 공백이 우려될 정도였다. 오겠다는 직원은 거의 없던 터라 해당 경찰서는 특별한 사유를 대는 직원을 제외하고는 부서 이동을 받아주지 않았다.

전입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B경찰서는 7월 인사에서 전출자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형사과 보직공모 마감을 연장해야 했다. 형사 기피 현상이 일반화하면서 기본 규모인 ‘4분의 1’(팀장 1명에 팀원 4명으로 구성된 팀을 의미하는 경찰 속어)도 못 채워 3분의 1로 운영되는 팀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형사과의 강력계장, 팀장은 인사 철마다 발 벗고 형사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서울의 한 강력계장은 “삼고초려? 오고초려를 해도 쉽지 않다”며 “야간근무를 최소화하고 승진시험 공부를 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마련해주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간신히 팀원을 구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서의 형사과장은 인사 철마다 사유서 쓰는 게 일이다. 신임 경찰관, 수사경과가 없는 경찰관 중에서 되는 대로 지원자를 받다 보니 경무과에 그 이유를 소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경험이 없거나 적은 형사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도 경찰 조직의 고민이다. 인사 철이 다가오면 형사과에서 신참을 끌어가는 건 아닌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는 게 지구대 간부의 주요 업무가 됐을 정도다.

형사 기피의 기본적인 원인은 높은 업무 강도다.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을 주로 다루는 데다 밤샘근무도 잦아 점점 더 형사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설명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가 특수성 강한 경찰 업무영역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는 “이러다 형사 파트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반면 4교대로 근무하고 있어 휴식이나 승진 공부에 유리한 지구대 근무 선호 경찰은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장에서는 수당 체계 차별화 등의 대안이 제시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사 업무 특성상 사기 진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당을 올리고 인사고과에서도 가점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형사#야근최소화#삼고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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