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의 의미… ‘파탄주의’는 시간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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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초 서울가정법원은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혼외 부정행위를 저지른 유책배우자 이모 씨(54)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 씨는 1980년 결혼한 조모 씨(52·여)와의 사이에서 이미 자녀 둘을 낳았지만 오랜 시간 부부사이가 원만치 못했다.

이 씨는 골프연습장에서 알게 된 여성과 동거하다 직장과 다니던 교회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4년 만에 관계를 정리했고, 조 씨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2년 뒤 또다시 같은 아파트 부녀회장과 내연관계를 맺었고, 아예 집을 나와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조 씨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0여 차례 각종 손해배상 소송과 간통죄, 무고 혐의 등 형사고소전이 난무했다.

결국 서울가정법원 가사5부(부장판사 배인구)는 “10년 가까이 별거하고 있고 계속 법적 분쟁을 벌여온 점 등을 고려할 때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악화돼 부부간의 신뢰와 혼인생활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이혼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이 고수해온 유책주의와는 달리 혼인 관계 파탄을 인정해 내린 판결이었다. 올해 6월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판사 김용석)도 재산분할 비율만 조정했을 뿐 1심의 판결을 그대로 따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5일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소송 청구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기존 유책주의 원칙을 유지했지만, 하급심에서는 예외를 인정하는 사례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도 하급심에서 판례 변경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조계는 “이번에 대법관 의견이 7 대 6으로 팽팽히 엇갈렸다는 점에서 상대 배우자를 보호하는 입법 장치만 마련되면 파탄주의로 선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홍철 가사전문변호사는 “하급심 판사들은 앞으로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책임비율이 애매모호한 실제 사건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종전보다 융통성 있고 파탄주의에 가깝게 전향적으로 판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혼 사건을 다수 변론해 온 배금자 변호사는 “유책 배우자의 상대가 이혼을 청구했음에도 고령이라는 이유로, 병수발해 줄 이가 없으니 계속 해서 참고 살라는 오래된 판례를 근거로 기각당하는 사례가 많다”며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뿐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배우자들의 청구도 세심히 고려하도록 일관된 법원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파탄주의#시간문제#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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